
장관해임안 통과 의장 사퇴 요구
이정현 대표 “끝장 보겠다” 단식
명분 없는 ‘약자 코스프레’ 지적
집권여당 초유 국정감사 보이콧
黨 방침 오락가락 자중지란 양상
‘협치’ 물거품 국회 무용론 우려
"단식은 정치행위다." 최근 단식에 들어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말이다. 자신의 단식을 비롯해 새누리당 의원들의 국감 보이콧에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야한다는 야권의 비판에 대한 입장이다. 그는 2014년 10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릴레이 단식에 돌입한 야당 의원들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집단이 국회”라고 공격한 적이 있다. 이번에 같은 논리로 역공을 받자 단식으로 정치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단식은 힘없는 사람들의 저항수단이다. 단식이 정치적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은 데는 간디의 영향이 크다. 인도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간디는 비폭력·무저항 투쟁의 일환으로 단식을 자주 했다.
우리나라에선 정치인들의 단식 투쟁이 유독 많다. 그 효시는 아무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1983년 군부독재 시절 야인으로 있던 그는 광주항쟁 3주년을 맞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민주회복·직선제 개헌 등을 요구하며 한 23일간의 단식은 민주화 투쟁에 불을 붙여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도 유명하다. 평화민주당 총재로 있던 1990년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였다. 지방자치 시대는 결국 열렸다.
양김(兩金)의 단식이 중요한 정치적 성과를 거두면서 이후 정치인들의 단식이 유행처럼 번졌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단식을 통해 여론을 환기하고 국면 전환을 꾀했다.
그동안의 단식은 야당 정치인의 전유물이었으나 이번엔 여당 정치인이 단식을 단행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절차를 강행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는 “정 의장이 물러나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라고 결기를 나타냈다. 끝장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건이 생명까지 걸만큼 중대한 사안인지 의문이다. 새누리당은 해임건의안 가결 과정에서의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고 있다. 이는 민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국회 내부의 문제다. 국민들은 절차가 옳은지 그른지 관심이 없다. 목숨까지 걸고 싸울 일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이를 빌미로 집권당이 국감까지 보이콧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새누리당은 국감에 참여하려는 자당 출신 김영우 국방위원장을 감금까지 했다. ‘땡깡정치’의 극치다. 김 위원장은 당론을 따르지 않고 국감에 참여했다.
정당의 정치행위는 궁극적으로 국민 지지를 모으기 위한 것이다. 어떤 정치행위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명분이 뒷받침돼야 한다. 간디 단식이 높은 평판을 얻은 것은 ‘비폭력’ 독립운동이라는 도덕적 명분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표 단식의 명분은 모호하다. 일각에선 ‘약자 코스프레’로 본다. 여소야대에서 여당이 얼마나 힘이 없나를 보여주기 위한 ‘정치 쇼’라는 지적이다.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희화화시켰다.
명색이 집권당 대표가 국회 운영에 있어 의장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불만을 이런 식으로 나타내서는 안 된다. 이 대표가 여론에 귀를 닫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국감 보이콧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그는 자당 의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게 새누리당 의원들과 제 소신”이라며 “국정감사에 복귀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의원총회에서 거부됐다. 당 방침이 오락가락하면서 집권여당이 자중지란(自中之亂) 양상이다. 애초에 투쟁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지금은 민생과 안보 현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한가하게 정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야당이 국감을 거부한다 해도 말려야 할 집권여당이 오히려 그 판을 깔고 앉았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여당 대표의 식사(食事) 문제가 정치의 중심에 있는 현실을 보는 국민은 피곤하다.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 대해 ‘협치’ 기대가 높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기대를 접어야 할듯하다. 의회정치 무용론이 다시 나올 만하다. 그나저나 이 대표는 언제까지 단식을 할까. 출구전략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