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장애인 연극제가 있어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연극내용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동행’이라는 주제였고, 헌신적으로 가족을 위해 살아오던 말기 암 엄마와 치매 할머니의 먼 길 동행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내용이다.
연극의 내용 보다 배우들의 역할이 더 감동적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중간 중간 나레이션 하시던 배우는 뇌 병변 장애를 가져서 언어가 서툴지만 충분한 연습으로 그 감정을 잘 전달했고, 한 배우는 언어가 어려운 배우도 있었으나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와 닿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내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성취가 어려워서 삶 자체를 포기 하는 기사들을 흔히 보게 된다.
하지만 오늘 이 연극을 공연한 배우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어렵다는 대사를 암기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객석을 울리기까지 했다. 참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장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의 성립 진행에 거치적거려 방해하거나 충분히 가능하지 못하게 함” 이라고 돼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일등, 우수, 완벽, 충분, 등의 과도한 성취와 넘침을 요구한다.
과연 그게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기준점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좀 천천히, 조금 더디게, 충분하지 않음에도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하고 당연시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은 커지지 않을까 싶다.
장애인 연극제를 보면서 그분들이 보여준 감동은 여태 내가본 여느 공연 중에 최고였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다름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알게 해 준 기회가 되기도 했다.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할 뿐이기에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시련에 불과하다. 자신의 신체적 장애에 좌절하며 불행하다고 느끼는 게 진짜 장애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행복하길 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행복의 기준이 너무 어렵고 높아서 이미 행복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 불행의 늪에서 빠져 나오질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