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보다 보람이 컸던 2016년 여름
무더위보다 보람이 컸던 2016년 여름
  • 임정민
  • 승인 2016.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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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 더위가 가져온 긍정 효과
‘더운 나라 며느리’ 이해하는 계기
며느리도 시어머니 사랑

재능기부로 열린 어린이 수영교실
복장 어수선 불구 열정으로
사랑과 관심으로 밝아진 우리 사회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도 결국은 끝났다. 이제 계절은 삶의 에너지인 가을로 돌아왔다. 올해 여름 무더위는 1973년 이래 최고, 그 어느 해 보다 폭염주의보가 많았다.

이상기후로 심신이 많이 지치기도 했던 올 여름은 보람 있는 일도 많았다. 가끔 방문하는 ‘시어머니’ 한 분이 “너무 더워 어떻게 살라는 건지”라고 날씨에 불만을 쏟아냈다. 그리곤 “이처럼 더운 날씨에 행동이 느려지는 건 당연한 것 같다”며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매일이 이처럼 더운 나라에서는 어떻게 일을 했겠느냐”며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때 비로소 상대방의 심정을 알게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했다.

행동이 느려 답답하다고 서운했던 시어머니의 마음이 ‘역지사지’를 통해 치유된 듯 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며느리에게 전해졌다. 베트남 며느리 L씨는 평소보다 밝은 모습으로 한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더운데 공부하느라 고생한다고 우리 어머님께서 칭찬해주셨어요. 요즘 시어머님과 사이가 좋아요!”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행복이 넘쳐난다.

이뿐만 아니다. 매주 주말 진행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자녀의 정서지원 음악교실’과 ‘자기 주도 학습’ 등에서도 많은 긍정의 변화가 있었다.

프로그램 진행 도중 부모님께 편지쓰기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K군은 “엄마! 아빠! 앞으로 말씀 잘 듣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곁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큼직하게 삐뚤빼뚤한 손 글씨지만 진심어린 내용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난 여름 ‘진로 탐색 및 직업체험’ 교육의 일환으로 수영교실도 실시했다. 고교 2학년부터 5년간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활약한 김경훈 레아웨딩 대표가 강사로 재능기부를 해주신 덕에 행사가 더욱 빛났다.

한국과 일본·중국·베트남·필리핀·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라오스 등 8개 국가의 자녀 40명이 모였다. 학년에 관계없이 초급·중급·고급반으로 나누어 지도가 이뤄졌다. 초급반은 수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라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발차기부터 시작했다. 30분이 지나자 서서히 물속에서 자유롭게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수영을 할 줄 알면 중급반,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면 고급반으로 줄을 서도록 했다. 그런데 중급반도, 고급반도 5m도 가지 못하고 ‘꼬르륵’ 하고 말았다. 초등·중등·고등학생 가운데 누구도 수영을 정식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사도 4면이 바다인 제주도에서 이럴 수 있나 놀라는 모습이었다.

복장도 실력만큼 어수선했다. 상당수가 축구복과 긴팔 셔츠를 입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경제적 사정으로 수영복 구입이 어려운 아이도 있었고, 수영복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춘기 여자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어설프게 보였지만 아이들은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했다. 발차기 연습과 킥판 잡고 발차기, 접영과 자유형을 열심히 따라했다. 자신의 체격보다 훨씬 큰 킥판에 매달려 발차기를 하던 꼬마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지금도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한다.

처음 배우는데도 몇 번만 가르쳐주자 곧잘 따라했다. 아이들이라 자연스럽게 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시간이 끝날 무렵 두 팔과 두 다리를 열심히 휘저으며 헤엄쳐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그 짧은 시간에 수영 선수의 꿈을 가진 어린이도 생겼다.

아이들도 강사도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한 수영교실은 소중한 추억이 됐다. 김경훈 대표는 짧은 시간에 아이들의 무한한 능력을 엿보게 됐다며 아이들을 위해 지속적인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아이들은 고마움에 연신 ‘물개박수’로 보답했다.

이처럼 사회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누군가의 숨은 능력을 찾아내고, 지역사회의 중심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임을 확인하며 2016년 여름을 보냈다. 풍성하고 멋진 가을하늘을 보며 밝은 사회를 위해 재능기부 등 수고를 마다 않으시는 많은 후원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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