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 지사, ‘소탐대실(小貪大失)’ 말아야
元 지사, ‘소탐대실(小貪大失)’ 말아야
  • 김계춘
  • 승인 2016.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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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회 등 각계 우려와 반대 불구
시청사 부지 임대주택 강행 조짐
소통·협치 실종…‘독불장군’ 연상

‘명분’ 좋다고 ‘옳은 것’은 아니…
순서 뒤바뀐 공론화 등 문제 많아
‘불통 이미지’ 탈피 도민 뜻 받들길

원희룡 제주지사가 시민복지타운 내 공공임대주택 논란과 관련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그동안 각계각층이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냈으나 전적으로 무시됐다. 취임 후 그토록 강조해 온 ‘소통(疏通)과 협치(協治)’가 실종된 가운데, 마치 ‘독불장군’을 연상케 할 정도다.

오죽하면 시민복지타운이 지역구인 김명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9일 도의회 본회의에서 원 지사를 상대로 ‘긴급 현안질문’까지 하고 나섰을까.

김 의원은 “공공임대주택이 주택공급 정책에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시청사 부지에 공동주택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과연 적절하냐”고 따져 물었다. 시민복지타운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재건축 붐과 맞물려 교통난 및 하수처리와 학생 수요 문제 등 숱한 부작용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희룡 지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실상 강행 의사를 곳곳에서 피력하고 있다. 다음은 원 지사가 9일 밤 개인 블로그에 올린 ‘공동임대주택은 우리의 집’이란 글이다.

“시청사 예정부지는 제주시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렇게 좋은 땅이라면 더더욱 청년과 무주택 서민을 위해 공공형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공목적 용도로 가장 급하고 최고로 비중이 큰 것은 서민주거 안정과 젊은 세대를 위한 주택정책이라고 확신한다.”

이 글에서 원 지사는 ‘청년과 무주택 서민을 위해서’라는 명분(名分)을 내걸었다. 하지만 ‘명분’이 좋다고 모든 게 ‘옳은 것’으로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심보다 읍면지역에 행복주택을 공급한다면, ‘도시집중화 방지 및 지역 균형발전’ 차원이란 명분이라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원 지사의 인식 가운데 실소(失笑)를 머금게 한 것은 ‘제주시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는 대목이다. 원 지사는 마치 시청사 부지를 ‘현재 남아있는, 그래서 이참에 써버려야 할 땅’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 같은 인식은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配慮)는 전혀 없이, 개발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곶자왈 등 제주의 소중한 자연과 자원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파괴한 전임 단체장들을 꼭 빼닮았다.

지난 1996년 민선 고민수 제주시장 시절 첫 발을 내딛은 문제의 땅은 처음에는 중앙공원 부지로, 나중엔 시청사를 옮기려고 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이후 디자인센터 유치 등 각종 계획이 수립됐으나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몇몇의 단체장들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선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 이 땅의 경우 ‘전체 시민의 공리(公利)’를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는 암묵적 합의였다. 그리고 이런 원칙은 지금껏 지켜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돌연 원희룡 도정이 이곳에 임대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청년과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라니 공공(公共)적 용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읍면지역 등을 놔두고 구태여 이곳에 지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원 지사는 이런 저런 명분과 이유를 내세우고 있으나, 4800명(4인 가족 1200세대)의 주거복지가 전체 시민 48만명을 위한 ‘고도의 공공복리’보다 앞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현 시청사 부지는 미래 세대를 위한 공공용지로 남겨둬야 한다. 인구 유입으로 인한 행정 수요 급증으로 향후 제주시청사의 이전(移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처럼 조급하게 서둘 게 아니라 미래의 ‘소중한 자산’으로 물려주는 것도 큰 가치가 있다.

이번 제주도의 시청사 부지 공공임대주택 계획은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켰다. 행정의 일방 독주 속 순서가 뒤바뀐 공론화 과정과 행정신뢰 추락, 그 중에서도 소통과 협치 실종으로 ‘불통(不通) 도정’의 이미지가 덧칠 된 것은 가장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원희룡 도정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기대는 매우 컸지만 최근 들어 민심이 싸늘해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도민들은 그리 어리숙하지도 않고, 만만한 존재도 아니다. 더 이상 원 지사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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