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춘화(春畵)
한국의 춘화(春畵)
  • 서인희
  • 승인 201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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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
서민들 삶과 노골적 표현 속 여유
인간적 표현 아름답기까지

우리나라 춘화 오랫동안 ‘방치’
중국과 다른 독창성 가진 미술품
예술적 가치 재조명 노력 필요

갤러리 정원의 자작나무에 매미들은 9월 가을로 접어들었음에도 꿋꿋하게 울어대고 있다. 가을 시작 무렵에 지인으로부터 한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본인이 선물 받은 책을,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감사하게도 내게 다시 택배로 보내왔다.

책 제목은 ‘한국의 춘화(春畵)’. 재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서민들의 삶과 노골적인 표현 속에 담겨있는 여유, 그리고 따뜻한 인간적인 표현들이 아름답기까지 한 춘화들이 담겼다.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풍속화에서 성 풍속 그림, 춘화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화필로 그려낸 춘화는 문인화적인 품격을 간직한, 뛰어난 회화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춘화는 배경과 형식, 내용면에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느꼈다.

미술사적으로 뚜렷한 회화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춘화는 오랫동안 음란물로 간주되어 연구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채 산실되거나 소외되어 왔다. 이는 아직도 남아있는 한국사회의 폐쇄적 성향 때문이 아닐까. 춘화의 도상들을 살펴보면 쾌락적이고 외설적인 요소 뒤에 성인식과 자연관, 도가적 세계관에 의한 성 관념 등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춘화가 널리 그려지기 시작한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기에 부유층이 증가하고 호색 문화가 유입되는 시대적 조류를 타면서다. 사실 한반도엔 그보다 더 ‘춘화’가 일찍 있었다. 고려시대 동경에 춘화가 새겨진 것이 발견된 바 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시대 토우들 중 상당수가 남녀 간의 성교행위를 표현하고 있거나 성적인 도상들로 이뤄져 있다.

한국 미술사 속에 등장하는 조형적 표현 중에서 성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최초의 예는 암각화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대표적인 것으로 울주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여러 명의 인물상이 표현되어 있는데, 도상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성 성기의 형태가 묘사된 다수의 인물이 발견됐다.

반면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예도 발견됐다고 한다. 안동 수곡리 암각화가 대표적이다.

암각화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성을 표현한 유물은 신라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토우라고 한다. 남녀의 성기가 강조되거나 성행위장면을 표현한 것들이 다수 발견됐다고 한다. 토우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거기에는 당시 사람들의 성 관념과 함께 신앙 개념이 함께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쾌락을 누리면서 자손들이 번창하기를 기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근석이 조선시대의 성신앙을 대표하는 조형물이라면 춘화는 성적 에로티시즘과 성풍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미술품일 수도 있다.

현재 남아있는 춘화는 모두 조선후기부터 근세로 이어진 것들이며, 수용계층은 상류사회로부터 서민층으로 확산된 것 같다. 그러나 유교문화의 엄격하고 폐쇄적인 성 관념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처럼 대량 생산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춘화의 영향이 반영된 점 등으로 미뤄 조선 후기의 춘화는 중국 춘화로부터 자극을 받아 생성 발전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춘화는 중국춘화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성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춘화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춘화양식을 창안해냄으로써 중국 춘화의 아류가 아니라 한국춘화로서 당당한 독자성을 가진 미술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춘화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춘화들은 그 예술적·사료적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춘화의 양도 극히 적다. 여러 본의 춘화가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 됐지만 소장가들의 기피 현상으로 발굴이 매우 힘들다.

아울러 정작 우수한 춘화들이 아직도 소장가들에 의해 깊숙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한국 춘화에 대한 연구가 어려운 현실이다. 동양의 고유한 성 관념과 우리의 성문화유물들, 그리고 한국 춘화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연구 노력 등이 시작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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