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무엇이 문제인가
어르신들 계단 통행 불편
市 상인 눈치보며 어물쩍
“보행약자 시각에서 봐야”
[편집자 주] 최근 제주시 원도심 중앙사거리가 ‘횡단보도 설치’ 문제로 뜨겁다. 6월 시작된 중앙지하도상가 보수 공사로 시청 방향 구간에 임시 횡단보도가 설치됐다가 지난달 공사가 끝나면서 다시 철거돼 시민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해당 구역은 그동안 보행 약자와 시민 편의를 위해서 횡단보도를 설치해야 한다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됐던 곳이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본지는 중앙사거리 횡단보도 설치 문제를 3회에 걸쳐서 짚어본다.
▲ ‘8분’ ‘12분’ '8초'
현재 임시 횡단보도가 철거된 중앙사거리 시청 방향 구간에서 장애인, 노약자 등 보행 약자가 길을 건너려면 중앙지하도상가나 180m 떨어진 횡단보도를 이용해야 한다. 이럴 경우 기자가 직접 수여 명의 노인과 동행 취재한 결과 각각 평균 ‘8분’과 ‘12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임시 횡단보도가 있었을 때 평균 ‘8초’ 걸렸던 데에 비해 확연한 차이다.
임시 횡단보도가 철거된 지 하루가 지난 1일 만난 홍모(75) 할머니는 길을 건너기 위해 멀리 떨어진 횡단보도를 이용하느라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홍 할머니는 “(임시) 횡단보도 있었을 때 편했는데 없어지고 나니 너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길을 건너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해당 구역에서 무단횡단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1일 오전에도 차가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 무단으로 길을 건너는 시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인근 안경 가게 종업원 부모(42)씨는 “(임시) 횡단보도 설치 전부터 노인들이 무단횡단을 자주 해 굉장히 위험했다”며 “몇 해 전에는 바로 눈앞에서 할머니가 길을 그냥 건너다가 버스에 치이는 것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보행 약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인근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김모(31․여)씨는 “업무 일로 길을 자주 건너야 하는데 지하상가 계단을 자주 오르내리거나 먼 길을 돌아오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인근에 사는 김혜림(42․여)씨도 “은행, 시장, 병원 왔다 갔다 하는 데 횡단보도가 없으면 불편하다”고 했다.
▲ '땜질식' 행정 논란
실제로 해당 구간은 지난 2007년 장애인, 노약자 등 교통약자와 시민의 통행 불편 해소를 위해 횡단보도 설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교통시설심의위원회가 열려 가결까지 됐지만, 지금까지 설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 관계자는 “인근 지하상가 상인들이 상가 이용 유동인구가 줄어 매출 이익이 감소할까봐 극심하게 반대해 행정에서 지금껏 설치를 못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행정에서도 지금까지 두 차례 정도 지하상가 상인들과 횡단보도 설치와 관련해 협의를 진행해 지하상가 내 승강기 설치 등 현대화 사업이 이뤄진 뒤에 횡단보도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승강기 설치 논의는 지금껏 이뤄지고 있지 않다.
지난달에는 임시 횡단보도 설치 존폐 문제로 논란이 불거지자 제주시는 기자회견을 통해 “장기적으로 원도심 활성화 사업과 연계해 횡단보도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꿔 땜질식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현수 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는 “횡단보도를 설치한다고 해서 지하상가를 이용하지 않는 건 아니”라며 “행정은 상인 눈치 보며 임시방편으로 갈등 상황을 넘어가는 게 아니라 장애인, 노약자 등 보행 약자의 처지에서 횡단보도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