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기념관과 뒷북치기 
김만덕기념관과 뒷북치기 
  • 송경호
  • 승인 2016.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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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1년 뒤 뒤늦은 방문
층별 주제 등 입체적 구성 돋보여
별도 공간 ‘객주’의 다양성

소프트웨어 개선은 무거운 숙제
김만덕 너무 박제화 된 느낌
생태공원 기념관 뒤 배치 아쉬움

뒷북이란 말이 있다. 때를 놓쳤다는 뜻이다. 뒤늦게 아는 척 하기, 차 떠난 뒤 손 흔들기 모두 뒷북치기다. 대부분 헛된 수고, 쓸 데 없는 짓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그런 뒷북일지언정 아주 값없는 건 아닐 게다. 때를 놓쳤더라도 돌아보며 깨우쳐 교훈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니 말이다. 그러니 앞장 서 치는 북도, 뒤쪽에서 두드리는 북도 저마다 제 몫이 있는 것이다. 그런 뒷북 좀 치려 하니 나무라지 말았으면 한다. 문 연지 오래인 김만덕기념관 얘기다.

지난 6·7월 잇따라 제주에 다녀왔다. 일과 답사 사이 짬을 내 김만덕기념관도 찾았다. 건입동 처가와 가까웠지만 개관 1년 넘도록 들르지 않았던 곳이다. ‘전 세계 최초 나눔 문화 기념관’이라는 거창한 구호가 솔깃하기보다는 낯설었고, 벽으로 와 닿았었다.

‘세계적’ ‘최초’ 등 빛나는 수사(修辭)를 앞세운 것들의 허망함을 허다하게 경험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들르면 안 될 것 같아 들렀다. 일종의 책무감인데, 동행한 후배 이주예술가의 강권도 한 몫 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관람은 그런대로 보람됐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되레 기대 이상이라 할 수 있다. 3개 층에 걸쳐 제각각 주제를 설정하고, 공간 구성을 되도록 입체적으로 하려 한 흔적이 돋보였다.

단순 ‘구경’을 벗어나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애쓴 점도 설득력 있었다. 주제에 따른 동선 또한 관람자의 편의성을 높였다. 객주라는 별도 공간 확보로 다양성을 높이고 편의성을 더 한 점도 좋았다. 그래선지 개관 1년만에 어느 정도 옛 도심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하다. 기획 단계에서 힘을 보탠 전문가들의 안목 덕분일 것이다.

다만 넘어서야 할 과제는 가볍지 않아 보였다. 기념관의 하드웨어는 그렇다 해도 소프트웨어는 무거운 숙제로 느껴졌다. 즉, 공들여 꾸민 전시 공간이 관람자에게 주는 메시지, 또는 관람자와의 교감이 취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아무래도 김만덕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문제다. 사료(史料) 속 인물 김만덕의 삶은 단순 명쾌하다. 기념관은 사실(史實) 그대로의 김만덕을 전시 ‘기법’으로 재현한다. 말 그대로 팩트(fact)에 충실할 뿐 허구(fiction)가 끼어들 수 없다. 결국 기념관 속 김만덕은 박제화 돼 있는 셈이다.

그렇게 몇 줄 글로 요약된 영웅담은 감동도 교감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사실, 어렵게 살던 이가 큰돈 벌어 나라, 또는 어려운 이들을 구했다는 영웅담은 흔하다. 그런데도 김만덕은 왜 각별해야 하는지 메시지가 또렷하지 않다.

차라리 제주작가회원 조중연의 소설 ‘탐라의 사생활’ 속 김만덕이 더 인간적이어서 더 각별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 소설에서 김만덕은 사랑하고 갈등하며 심지어 노회하다. 기념관 속 김만덕은 그저 비범하기만 하다. 순도 높은 비범함은 대중과의 거리가 멀다. 그런 면에서 넘어야 할 산이되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잘 꾸민 내부와는 달리 기념관과 주변 공간과의 관계 구성도 아쉬웠다. 열린 공간은 물러서고 닫힌 공간이 앞섰다. 즉, 닫힌 공간인 기념관은 큰 길 산지로와 접해있는 반면, 열린 공간인 생태공원은 기념관 뒤로 숨은 형국이다. 큰 길이 사람들의 주된 동선이라 할 때 이런 배치는 접근 용이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공원이라는 열린 공간을 앞세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이들이 그 뒤쪽 기념관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공원 같은 열린 공간은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설 수 있지만, 기념관처럼 닫힌 공간은 진입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하지만 기념관의 앞날을 길고 멀리 봤다면 어떻게든 넘어섰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때마침 벌어지고 있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5)에 참여하고 한 외국작가는 “하나의 건물이나 작품을 세울 때는 마을 전체를 본다”고 했다. 기념관과 주변 장소와의 관계를 보면, 마을 전체는커녕 해당 건축 부지만 들여다 본 것 아닌가 싶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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