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발돼도 돈만 내면 ‘면죄부’
도로 가진 자들 휘젓는 공간 전락
모 재벌 과태료만 500만원
과태료에 벌점 부과가 대안
상습위반 면허취소 요건도 낮춰야
운전자·위반자 모두 처벌 필요
지난 봄 일부 대기업 CEO들이 운전기사에 대한 ‘슈퍼갑질’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다. 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일선 사장은 급할 경우 교통법규를 무시하라고 지시한 ‘수행기사 매뉴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기사는 사장이 빨리 가라고 지시하면 신호나 차선·버스전용차로·제한속도를 아예 무시하고 달려야 했고, 한 달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만 500만~600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수행 운전기사를 노예 부리듯 하고 욕설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 행태가 다시 한번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는 교통법규를 얼마든지 위반해도 돈만 내면 더 이상 불이익이 따르지 않는 우리 단속체계의 허점도 담겨있다.
우리나라는 현장 단속인력의 부족 등으로 교통법규 위반단속을 무인장비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무인장비로 단속되면 횟수와 관계없이 차량소유자는 위반행위에 따른 범칙금에 1만~3만원을 추가한 과태료를 납부하는 순간 모든 처분이나 처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는 돈 많은 자들이 마음 놓고 휘젓고 다니는 위험한 공간이 돼 버렸다.
우리 도로교통법은 교통법규 위반시 행위자 책임이라는 원칙 아래 범칙금과 과태료 부과를 병행하는 이원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원래 위반 당시 운전자가 차량소유자면 범칙금을 부과하고, 그렇지 않으면 차량소유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차량소유자가 법규위반 운전자인 경우에도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고 대부분 과태료를 납부하고 있다. 무인단속장비로는 실제 위반행위를 한 운전자를 합리적인 의심 없이 특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위반자가 처벌을 받아야 하는 대상자와 처벌의 종류를 선택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현재와 같이 이원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상습적인 제한속도 위반 등 악질 교통범칙자를 도로에서 몰아내려면 차량 소유자의 과태료 납부가 범칙금 납부와 비교했을 때 결코 유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과태료 납부자에게 범칙금 납부자와 동일한 벌점을 부과하거나 위반행위별로 과태료 금액을 대폭 상향해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벌점의 법적 성질은 행정청 내 사무처리에 관한 재량준칙에 불과하므로 무인단속에 적발되어 과태료를 납부한 차량소유자에게도 벌점을 부과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상 택시운송사업자가 준수사항을 위반한 경우에는 과태료나 과징금과 함께 벌점을 부과하고 있다.
다행히 경찰청이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과태료 처분을 하더라도 벌점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범칙금보다 고액의 과태료를 납부하고, 벌점까지 받게 되면 실제 범칙자인 차량소유자로서는 과태료 납부가 유리하지 않으므로 위반사실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범칙금을 납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도난차량·렌터카 또는 리스차량이거나 법인 소유의 차량 등에는 운전자가 밝혀지지 않으면 벌점을 부과할 수 없는 문제점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서라도 과태료 금액을 높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통상 벌점 10점의 금전적 가치가 7만~9만원이고 면허정지처분인 40점을 70만~80만원으로 산정하고 있다. 벌점을 부과할 수 없다면 위반행위에 따른 벌점과 면허처분의 금전적 가치에 상응한 금액으로 상향하여 과태료를 부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습적으로 제한속도를 위반한 운전자와 차량소유자에게는 운전면허 행정처분이 연계돼야 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통법규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는 벌점과 연계돼 있고 위반행위 별로 부과된 누적벌점에 따라 운전면허의 정지나 취소 등 제재수준을 달리하고 있다.
일본은 벌점 15점이면 면허가 취소되지만 3회 이상 상습위반자는 4점의 벌점으로도 면허를 취소하고 있다. 우리도 교통법규 상습위반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상습위반자로 적발되는 경우에는 그 벌점의 1/2로도 면허취소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상습위반의 횟수와 정도에 따라 행정처분을 차등화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