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래된 미래를 그려보며
제주의 오래된 미래를 그려보며
  • 유영신
  • 승인 2016.0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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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속도 경쟁
삶 시속 60㎞에서 80㎞ 된 듯
자동차·핸드폰 등 영향

제주 사회도 빠르게 변화
자본에 의연한 인간존엄은 지켜야
물질보다 사람가치 우선한 제주

요즘 제주는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속도의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주범은 ‘문명의 이기’다 . 우선 자동차다. 섬 곳곳을 그물망처럼 이어놓은 잘 닦인 도로 덕인지, 연 1000만명을 훨씬 넘는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렌터카 때문인지, 거기에 보태어 제주인들의 경제적 형편이 나아져서인지 최근 부쩍 늘어난 차량과 빈번한 이동으로 인해 예전엔 평균 시속 60㎞의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시속 80㎞의 속도로 살고 있는 듯하다.

통신수단도 우리네 삶에 속도를 더했다. 집 전화만 있던 시절엔 약속의 단위가 ‘하루’였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 상대방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아 만나곤 했다. 통화가 안되면 만남을 다음으로 연기해야 했다. 지금은 ‘핸드폰’을 넘어 스마트폰이다. 실시간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로 무료 문자와 통화도 가능해지다 보니 약속이 시간도 아닌 분(分)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 생각나면 전화해서 몇 분 뒤 어디에서 보자며 차를 타고 달려간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제주인의 삶 전반에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낮 시간에도 구제주·신제주 할 것 없이 체증과 주차난으로 남보다 먼저 가야하고 몸도 마음도 바쁘다보니 조바심이 일곤 한다. 하늘 길마저도 매 마찬가지인지 항공편도 요즘엔 제시간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결국 “빨리 빨리”를 외치게 된다.

또 하나 제주도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다.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할 정도다. ‘광풍’이라 부를 정도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공유의 개념에 가까웠던 제주의 부동산은 이제 먼 나라 얘기가 되었다. 이웃 간에 경계보다는 사람의 관계를 더 중히 여겨 시골집이나 땅은 거저 얻을 수도 있었으나, 이젠 여기저기서 부동산 때문에 시비가 붙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집값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결혼 적령기를 앞둔 청년들은 대도시 청년마냥 내집 마련 걱정에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한탄이다.

제주를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만드는 요소는 독특함이다. 자연도 그렇고 언어와 문화도 그렇다. 여러 가지 독특한 문화유산 중에서도 요즘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게 있다.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즐기기도 했던 예식문화다.

예식을 치를라치면 온 일가친척, 친구들이 나서서 몇날 며칠을 함께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웃집마저 집을 비워줘 큰 일을 치르는데 힘을 보탠다는 게 외지인에겐 참 신기하기도 하고 부러워 보였다. 이젠 이 풍속마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문시설인 호텔이나 대형 식당 혹은 장례식장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마치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일사천리로 해치운다는 느낌이다.

당사자들도 그렇고 가족·일가친척·이웃들 모두가 정말로 편리할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깔끔하고 세련된 문화인이 된 것 같아 멋져 보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쁜 세상인데”라며 이유를 더해 보지만 어찌된 일인지 돌아서 나오는 마음 한 켠이 공연히 서운한 게 촌스럽게도 옛날 것을 좋아하는 나만의 생각만을 아닐 것이다.

제주의 급격한 여러 가지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마음에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라는 책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 마을 역시 저자가 라다크에서 느꼈던 아름다운 사람과 삶도 개발이라는 과정을 통해 많이 손상되고 변형되었다고 한다. 라다크와 같은 히말라야 깊은 골에 자리한 마을도 개방과 개발을 피해갈 수 없었듯이 어느 사회도 이러한 변화를 피해갈 순 없을게다.

우리 제주 역시 많은 이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만큼 변화의 물결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있다.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자본의 횡포와 몰상식 앞에 의연한 인간 존엄의 가치다.

아직도 우리 곁에 꿋꿋하게 살아있는 푸르른 산과 바다의 생명력을 받아 강인한 생태적 감수성을 지키고 사회적 연대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가치가 물질의 가치보다 우선한 여전히 살만한 제주로 남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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