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개발 도민 주도 차원
도민자본 육성 필요성 공감
정의에선 의견 다를 수도
숱한 제주 향토자본 사라져
기득권·근시안적 경쟁 등 원인
외부·향토자본 교류도 필요
제주개발사업에서 도민이 주도하는 도민자본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최근에는 제2공항·물산업·풍력·전기차·크루즈 등 대규모 투자사업에서 도민에게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도민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서 도민자본 육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도민자본이라고 해야 할까. 또 우리가 도민자본에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우선 도민자본은 지역에 근거를 둔 자본 또는 지역자본(local capital)이다. 따라서 가장 쉽게 자본의 주체인 개인이나 기업의 주소지가 제주도로 등록되어 있는지를 보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도내 거주기간이 얼마 이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제주에서 실질적 생활이나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을 다시 구체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투자대상이 제주지역에 위치하는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과거 제주도민들이 중문의 국제컨벤션센터(ICC)에 투자한 자금이 대표적일 것이다. 반면에 도민들이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한 자금은 도민자본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 자금 중 일부는 나중에 도내 기업이나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한 준비자금 역할을 할 수는 있다. 또한 삼성전자의 자금 중 제주신라호텔에 투자한 자금을 도민자본이라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
셋째 투자효과나 투자목적이 제주 지역사회나 지역경제, 도민의 소득이나 복지에 기여하는가 하는 기준이다. 지역개발론이나 사회학에서 거론하는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얼마나 증대시키는가를 보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은 자연자본·물리적 자본·인적자본과 함께 경제발전 촉진의 역할을 하는 사회구조나 계약시스템·사법제도·정부조직·관행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제주 공동체의 공동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는 자본, 사업의 결과 발생하는 소득의 상당부분이 도민에게 귀속되는 자본·교통인프라·육시설 투자와 같이 지역 내에 외부경제효과를 창출하는 투자자본을 도민자본으로 보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도내 투자프로젝트에 동원되는 모든 자본이 도민자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투자이익이 소수에 한정되거나 단기에 그쳐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사회적 자본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도민자본으로 간주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지역에서 오래 영업을 하고 있거나 지역사업에서 투자수익의 대부분이 발생하고 있다면 지역 소비자의 지지를 받아야 하므로 지역경제발전이나 지역주민의 복지 향상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개인의 경우도 지역에 오래 거주할수록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투자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역정책의 결정은 지역에 오래 기반을 둔 소수 기업이나 개인에 좌우되기도 한다. 향토자본이 대표적 사례다.
향토자본은 지역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정체성을 확실하게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자본 동원 규모가 작고 전문 경영능력이 제한되므로 외부의 대형 자본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애석하게도 해방 이후 제주의 숱한 향토기업들은 모두 외부자본에 종속되거나 영속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반면에 대구에서 창업한 삼성이나 광주에서 창업한 금호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제주의 향토자본을 도민자본으로 키우기 전에 장기 지속가능한 발전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원인을 찾아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기득권에 안주하여 외부 환경변화를 읽지 못하고 새로운 경제적 기회 개척보다는 단기이익 획득 경쟁에 몰입하지는 않았는지 나아가 지역정치 부패구조 때문에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적 자본 창출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아울러 지역 내에 외부자본과 향토자본이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시장이나 제도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도 향토자본 성장의 걸림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