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상륙작전’ 평가 극명
한 측 “완성도 떨어지고 조악하다”
반대 측 “낮은 평점은 뒤틀린 감정”
영화서 자유가치 공감하면 그만
사드 또한 이분법적 논쟁
북핵 대한 최소한의 자위적 조치
어느덧 가을 초입이다. 절기상 입추가 어제였고, 길가 코스모스 꽃잎도 피었다 스러져 가고 있으니 가을이 아닌가. 그런데 이 불볕더위에 생뚱맞게도 웬 가을 타령이냐 할 것이다.
덥기 때문이다. 거기다 근자에 회자되고 있는 핫 이슈 사드 배치, 영화 인천상륙작전 논란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탓도 있음이다. 그래서 푸르디푸른 가을날 여유와 사유의 숲길을 거닐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필자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위 두 논제에 대한 속내를 드러내고자 한다.
자유민주국가의 존립을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 존립과 안위 문제를 두고서도 갑론을박하고 있는 작금의 실상이 멸망의 길에 접어들었던 조선시대 말기 그 정세와 판박이라면, 논리의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5월 팔미도를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1903년 한국 최초의 등대가 설치된 이래 100여 년간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었던 섬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약 16㎞ 지점 해상에 있는 무인도, 그 면적이 가파도 정도 크기의 돌섬이다.
이 섬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연합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특명을 받은 켈로부대 대원들이 북한군에 의해 점령당한 등대를 탈환, 등댓불을 밝힘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이다.
우리에게 자유와 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준 인천상륙작전, 그 전쟁사를 다룬 영화가 요즘 논란거리다. 좌·우 진영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측은 “완성도가 떨어진다. 스토리가 조악하다.”고 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 측은 “누가 봐도 작품성과 완성도가 높은, 훌륭한 영화가 낮은 평점을 주는 것은 뒤틀린 감정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념에 따른 완성도 논란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영화관을 찾는 평범한 소시민으로서는 그곳에서 무명의 용사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유의 가치, 그리고 그들이 공유한 진한 조국애, 전우애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로써 족할 것이다. 덤으로 이억 만리 이국 땅 전선에서 피 흘려 숨져간 16개국 UN 참전국 용사들의 희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터이다.
그들 주장처럼 스토리가 조악(거칠고 나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이고, 전쟁터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다룬 영화이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본다. 영화 끝 무렵 “어머니! 저는 제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어머니보다)조국을 택했습니다.”라며 스러져가는 한 영웅의 독백을 들으며, 잠시 감동에 젖을 수 있다면 그로써 이 영화의 완성도는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이분법적 사고로 국력을 소진하는 논쟁이 어디 그 뿐인가. 사드 배치 논란은 또 어떤가. 전략적 방어수단의 하나일 뿐이고, 국가존립을 위한 최소한 조치일 뿐인데도 국론이 양분되고 있으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드 배치 반대론자들은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기를 가진 자와 그렇지 아니한 자와의 협상이 과연 공정하리라고 보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런 집단과의 협상 전략이나 어떤 대응수단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필자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반대론자들의 논리를 이해할 수도 없고, 논란의 진흙탕 물속에 뛰어들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자의적으로 예단하며, 국가 존립과 안위를 위한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좌우 논리를 떠나 사드는 북핵에 대한 최소한의 자위적 조치로 미국 영토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에 배치하려는 것뿐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힘의 균형이나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제2의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더 이상 무슨 사족이 필요한가. 속된 표현으로 살겠다는데 웬 난리들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