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웅변학원이 필요하다”
“여의도에 웅변학원이 필요하다”
  • 이종일
  • 승인 2016.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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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인기 많았던 웅변
지금도 선거철 되면 큰 목소리들
힐러리 대선후보 찬조 연설 ‘감동’

한국은 대통령이나 의원이나
귀에는 들리나 가슴엔 담기지 않아
대중 설득위한 치밀한 준비 필수

19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동네마다 웅변·주산학원이라는 간판을 하나쯤 볼 수 있었다. 학원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긴 했지만 이상하게 웅변학원이 성업을 이뤘고 학교에서는 자주 웅변대회가 열리곤 했다.

4월5일 식목일 기념 웅변대회로 시작해 6·25기념 반공 웅변대회를 거쳐 한글날 기념 한글 사랑 웅변대회까지는 기본 행사였고 나라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수시로 대회가 열리곤 했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벌어진 대회에서 수상하면 시(市)대회, 도(道) 대회로 진출하고, 이윽고 전국대회까지 참가하는 과정이 이어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집단 계몽 차원에서 벌어진 것 같다.

사실, 웅변의 역사는 유구하다. 기원전 5~4세기 민주제 시대의 아테네에서 민회의 배심원과 민중을 설득할 필요에서 발생해 이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웅변가를 배출했다고 한다. 이후, 근대국가 성립으로 의회제도가 발달하게 되고 특히 영국의 의회주의를 중심으로 정치적 연설이 발달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도 선거철만 되면 많은 후보자들의 열정적인 주장을 대변하는 방법으로 자주 접할 수 있다. 지난 7월 26일은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힐러리가 선출된 날이다. 이 현장에는 몇몇 인사들의 지지 연설이 있었다.

대통령 후보로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은 “힐러리와 내가 몇 가지 주제에서 생각이 다른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면서 깨끗한 승복과 단합을 역설했다. 그리고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는 한때 남편과 경쟁했던 힐러리의 지지 연설에서 “나는 매일 아침 흑인 노예들이 지은 집에서 일어나 아름답고 지적인 흑인 여성으로 자란 두 딸이 백악관 잔디밭에서 개들과 노는 모습을 본다.”고 얘기해 큰 감동을 주었다. 또한, 남편이자 전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1971년 어느 봄날, 저는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로 시작해 힐러리와의 사랑과 가족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위주로 찬조연설을 했다.

이 세 사람의 연설에는 패자의 성숙함과 진정성으로 가득해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어떤 미사어구나 주장보다 아름답고 호소력이 있다. 성숙한 정치 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박수를 보내며 한편 부러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 정치인들의 연설은 어떠한가? 2016년 20대 국회 개원연설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20분 동안 진행한 연설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34번, 경제를 29번, 국회를 24번 사용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하고 강조해야할 사안들임을 인정해도 지나치게 건조하고 재미없는 연설이다.

소리는 귀로 들리나 가슴에 담기지 않고 내용은 일방적이고 신선함이 없어 어떤 감동도 설렘도 없었다. 항상 같은 어조로 사안에 관계없이 천편일률적인 표현은 감동을 주기 힘들며 호소력도 떨어진다.

대통령의 연설 수준이 이러하니 국회의원의 수준을 비난하기도 힘들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어렵게 선택한 20대 국회의 첫 대정부 질문을 TV 중계로 우연히 지켜보다 받은 충격은 절망감을 넘어 좌절하기에 충분했다.

전문적인 연구와 준비는 부족하고 불필요한 고성과 막말이 판치는 모습이 시장 뒷골목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을 연출했다. 왜 우리는 이리 촌스러운가?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를 그렇게 밖에 사용할 수 없는가?

정치인의 연설은 대중을 설득하고 이끄는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충분히 계획적이고 연습되어져야 한다. 진정성 있게 구성되어져야하며 치밀하게 연출되어야 한다. 법조문과 경제용어에만 몰두하지 말고 문학과 연극을 사랑하고 익혀야 한다.

소리도 높은 음은 멀리가지 못한다. 오히려 낮은 음은 가슴을 두드리고 긴 여운을 남긴다. 꽹과리의 명쾌하고 자극적인 소리도 징의 폭넓은 울림이 받쳐줘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하루아침에 변화를 기대 할 수는 힘들겠지만 심각성을 자각하고 노력하여 감동적인 연설을 듣는 국민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여의도에 웅변학원이나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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