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부고속철 ‘천성산 도룡뇽사건’
자살까지 부른 ‘밀양 송전탑 투쟁’
강정 해군기지 갈등과 닮은 꼴
유독 제주의 경우만 구상금 청구
지사·국회의원 등 철회 요구 외면
도민들 ‘비상한 각오’ 다져야 …
#.1 천성산 ‘도룡뇽 사건’ : 경남 양산에 있는 천성산(千聖山)은 그 이름에서 보듯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일천 명의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이 되게 하였다는 일화가 깃든 산이다. 하지만 천성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율(知律)스님이 주도한 ‘도룡뇽 사건’이었다.
사건은 지난 1999년 경부고속철도가 관통할 천성산에 고산 늪지와 도룡뇽을 비롯해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지며 시작됐다. 이에 환경론자들은 고속철이 관통하게 되면 지역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주장하며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 중심엔 지율스님이 있었다.
정부가 기존 노선을 유지하며 공사를 강행키로 방침을 밝히자 반대대책위는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당시 환경단체인 ‘도룡뇽의 친구들’은 사상 유례가 없는 ‘도룡뇽’을 원고로 내세웠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율스님은 단식(斷食)을 거듭했고, 대구~부산 KTX 공사는 총 289일간 중단됐다.
결국 이 사건은 2006년 6월 대법원이 기각함에 따라 공사가 재개됐다. 그리고 2010년 11월 천신만고 끝에 천성산 원효터널은 완공된다.
#.2 밀양(密陽) ‘송전탑 투쟁’ : 경상남도 밀양시에 건설될 765㎸의 고압 송전선 및 송전탑을 두고 밀양 시민과 한국전력 등 정부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분쟁을 말한다.
지난 2005년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들이 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벌인 항의시위가 투쟁의 시초다. 외국에선 1000㎞ 이상 장거리 송전에만 사용하는 765㎸의 초고압(超高壓) 송전선을 마을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건설하는 것이 주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저변엔 원전(原電)을 중심으로 짜인 전력수급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밀양 5개 면에서 공사가 시작된 2011년 여름 이후 사업자 측과 주민들은 강하게 부딪쳤다. 대규모로 동원된 경찰은 주민을 진압하고 용역과 인부를 보호하는데 급급했다. 2012년 1월 산외면 주민 이치우(당시 74세)씨가 분신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까지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주민을 상대로 200건이 넘는 고소와 고발을 남발했다. 또한 법원은 18명에게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며 집행유예와 벌금을 선고했다. 시간은 흘러 반대대책위와 시민들은 2015년 12월, ‘처절했던 10년’을 기리는 ‘밀양 송전탑 투쟁 백서’를 발간했다.
이 두 사건은 정부의 일방적인 국책사업에 지역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제주해군기지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경찰 등의 공권력이 사업자 측만 일방 두둔하고 나선 것도 대동소이하다.
한 가지 확연한 차이점은 모두가 대규모 국책사업이고 지역주민들의 반발 강도 역시 비슷했지만, 유독 제주의 경우에만 구상금(求償金)을 청구해 주민들을 옥죄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6월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책사업이었던 천성산 경부고속철도 사업을 언급하며 “지율스님이 도룡농 때문에 100일간 단식하는 등으로 1조5000억원(추산) 손실이 있었다. 그 때 구상금을 얼마나 청구했느냐. 손해가 막대했지만 단 한 푼도 청구하지 않았다”고 따져 물었다.
원 지사는 “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왜 강정이냐는 것이다. 제주도민을 만만히 봤기 때문 아니겠느냐. 해군의 조치는 도민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법의 형평성이 아닌 감정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비판하며 구상금 철회를 촉구했다.
제주지역 세 국회의원도 성명을 내고 “해군기지 구상금 청구는 국가가 할 도리가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정세균 국회의장도 가세하고 나섰다. 정 의장은 “이러한 일로 구상금을 청구하면 국민들이 갈 데가 없는 것 아니냐”며 “주민 공동체가 더 이상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도 해군 등 정부는 아직 가타부타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다. 이는 끝까지 도세가 약한 제주도민들을 능멸하고 겁박(劫迫)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지역주민과 등을 돌린 채 안보(安保)를 논할 수 없으며, 이제는 민과 관이 ‘화합 분위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끝내 해군 등이 우리의 충정(衷情)을 외면한다면 제주도민 또한 ‘비상한 각오’를 다잡을 수밖에 없다.
‘메아리 없는 정부’에 맞서 8월의 초입인 1일, 제주에서는 ‘2016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 폭염을 뚫고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