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 보조금은 정녕 ‘눈먼 돈’인가. 농산물 저온유통체계 지원사업과 관련 보조금을 빼돌려 ‘꿀꺽’ 삼킨 일당이 또다시 적발됐다. 보조금을 횡령하는 사건이 다반사(茶飯事)로 벌어지다 보니 죄의식은커녕 ‘빼먹지 못하는 게 바보’라는 자조(自嘲) 섞인 말이 나돌 정도다.
서귀포경찰서는 국고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혐의로 모 영농조합법인 대표 이모(54)씨 등 4명을 입건했다. 또 영농조합법인과 공모해 농산물 저온저장고 공사비를 부풀려 책정한 모 건설회사 대표 고모(56)씨 등 4명도 건설산업법 위반혐의로 입건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모두 7억7000만원의 보조금(補助金)을 수령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무려 35%에 달하는 2억7000만원을 빼돌렸다. 이를 위해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실제보다 대폭 부풀리는 수법을 동원했다.
여기엔 건설회사 대표 고씨도 적극 가담했다. 고씨가 공사비를 부풀린 공사원가 계산서 등 관련서류를 작성하면 영농조합법인이 이를 근거로 제주도에 보조금을 신청해 교부받고 그 차액(差額)을 돌려받는 식이다. 특히 고씨는 해당 공사를 수주받기 위해 3% 가량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다른 업체의 건설면허를 대여받아 표준도급계약서를 작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국고 보조금 횡령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며 그 대상도 광범위하다. 이에 앞서 지난달 7일에는 경영컨설팅 보조금 17억원을 가로챈 사회적 기업과 영농조합법인 대표 등 5명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각종 보조금이 당초 목적과 다르게 줄줄 새는 것은 제도적 허점(虛點)과 함께 ‘보조금은 눈먼 돈’이란 인식이 사회 저변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현행 보조금 제도는 서류를 갖춰 신청하면 우선 지급하고 추후 실사(實査)하는 체계다. 때문에 이런 맹점을 악용한 부정수급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안 걸리면 횡재’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이 같은 악순환(惡循環)이 되풀이되고 있다.
제도가 잘못됐다면 개선책이라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직무 태만으로, 국고 보조금을 ‘눈먼 돈’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