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의 길
청백리의 길
  • 김은석
  • 승인 201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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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뇌물 검사장 등 구속
청와대 고위공직자도 각종 의혹
조선 500년 청백리 200명 불과

‘더’ 집착·욕심이 괴로움 근원
지난 주 원 도정 대대적 인사 단행
공직 입문 초심으로 봉사 기대

옛 사람들은 “집이 사람보다 크면 그 집에 사람이 눌린다”고 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정작 그 사람이 눌리게 된다는 뜻이다. 수임료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전관비리로 변호사가 기소되고, 거액의 뇌물로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는가 하면, 청와대 고위공직자까지 각종 비리의혹으로 지탄받고 있다.

이 순간 비극이란 말조차 무색할 지경으로 한국 사회는 참담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비극(tragodia)이 비극적이었던 것은 신이 정한 ‘운명’ 때문이지만 우리에게 비극은 ‘권력’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혼돈에 빠지게 하는 사건들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비극이 될 수가 없다. 그것은 권력 비리를 탄생시킨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쥔 자들에게 추상같은 엄정함으로 스스로 채찍질하며 살아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조선시대 이상적인 공직자의 표상이 다름 아닌 ‘청백리(淸白吏)’이다. 그런데 황희·이황과 같은 청백리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200여 명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탄식한다. “400여 년 동안에 예복을 입고 조정에서 벼슬한 자가 거의 몇 천 명에서 몇 만 명에 이르는데, 그 중에 청백리로 뽑힌 사람이 겨우 이 정도니 사대부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비정상(非正常)이 정상(正常)이 되는 현실에서 당대 최고의 가객 임제는 면앙정 달빛 아래서 이런 글을 남기고 있다. “우러러보아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리”

우리가 공직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한 개인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권력은 청백리를 어렵게 만들지만 예외가 있다. 정혜공 박수량이다. 그는 64세까지 39년간을 오늘에 장관에 해당하는 예조·형조·호조·병조판서와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한성 판윤 등을 지낸 당대 최고위직 인사였다. 그러나 그의 비석에는 단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다. 이른바 ‘백비(白碑)’다.

왜 백비일까? 명종 임금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청백함을 알면서 비석에다 새삼스럽게 그 실상을 새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백에 누(累)가 될지 모른다.” 명종은 박수량이 청백하다는 소문을 듣고 암행어사를 여러 차례 보내 확인했다. 정말 그는 변변한 집 한 채 없었다. 그가 세상을 하직했을 때도 운상비 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런 그에게 요란하게 세상에서 얻은 직함을 남기는 것은 오히려 그에게 누가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위대하다면 있는 그대로의 서술만으로도 족하다. 온갖 미사어구는 오히려 위선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내면보다는 외형의 화려함이 우리의 이목을 끄는 오늘의 풍토에서 백비는 그만큼 감동으로 다가선다.

지난 휴가 때 경주 양동마을을 다녀왔다. 여강 이씨((驪江 李氏) 종가인 무첨당 현판의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창산세거’(蒼山世居). ‘조상들이 뿌리를 내린 마을 뒷산 (설)창산에서 부끄럼 없이 대대로 살아가라’는 이씨 종가의 가훈이다.

더 가지려는 생각, 더 오르려는 집착, 더 받으려는 욕심이 괴로움의 근원이다. 사실 넓게 보면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는 것은 다만 관념일 따름이다.

지난 주 원희룡 도정의 대대적인 인사가 단행됐다. 호사가들 사이에 말들이 많다. 그러나 보직을 통해, 직책을 통해 덕을 보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다산은 이렇게 가르친다. “공사(公事)에 여가가 있거든 필히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가다듬어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려내어 지성으로 잘되기를 강구해야 한다”. 옳은 말이다.

어떤 보직이든, 직책이든 스스로 왜 공직자의 길을 선택했는지를 되돌아보고, 오로지 그 길을 걸어갔으면 하는 것이 도민의 바람이다. 여강 이씨 가훈을 활용해보자. ‘한라세거(漢拏世居)’, 도민 모두 한라산에서 대대로 부끄럼 없이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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