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트럼보와 ‘강요된 정의’
거장 트럼보와 ‘강요된 정의’
  • 안혜경
  • 승인 2016.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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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등 명작 영화 집필
아카데미상만 여러 차례
냉전시대 ‘빨갱이 사냥’의 피해자

하루아침에 ‘사드’ 배치 결정 성주
정부 ‘외부인 색출’ 블랙리스트
트럼보의 불쾌·불편함 오늘 한국서

우리들을 아끼고 지혜로운 인간으로 자라도록 지도해주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많다. 그러나 지나친 폭력 행사나 학생들 간의 신뢰를 깨뜨리는 강요된 질서와 규칙의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 선생님도 더러 있다. 떠든 급우의 이름을 칠판에 쓰게 했던 건 경미한 사례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떤 선생님은 “반에 프락치를 심어놨으니 행동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며 우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같은 반 친구 사이를 고자질과 불신으로 갈라놓는 일이었다.

어떤 가치나 신념을 ‘절대선(絶對善)’으로 두고 그 나머지를 모두다 악(惡)으로 몰아가는 극단적 이분법의 결과는 어떨까? 할리우드에서 ‘로마의 휴일’과 ‘스파르타쿠스’ 등 아카데미상만도 몇 차례 받은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영화 ‘트럼보’. 2차 대전 후 미·소 냉전 하에서 미국에 불어 닥친 ‘빨갱이 사냥’의 피해자였던 달튼 트럼보(James Dalton Trumbo·1905~1976)는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고,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 시나리오를 써야했다.

건강과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트럼보처럼 신념과 양심을 지킨 작가들이 있었다. 반면 당시 ‘반미활동조사위원회’를 앞세워 트럼보 등에게 위협을 가하며 공산주의자 색출에 앞장선 배우이자 가십칼럼니스트 ‘헤다 호퍼’와 이런 색출과 배제에 기여한 배우 ‘존 웨인’과 ‘로널드 레이건’ 등의 영화계 동료들도 있었다.

트럼보는 평생에 걸친 탁월한 창작 활동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1970년 ‘전미작가조합’의 ‘로렐상(Laurel Award)’을 수상한다. 그는 수상소감을 통해 감내해야만 했던 이데올로기적 ‘광풍’의 아픔을 뱉어낸다. “모두 공포의 시절이었고, 가족이 해체되고 집을 잃고 심지어 목숨도 잃었다. 모두가 희생자다. 우리 모두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말이나 행동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오늘 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다. 오랜 세월 서로에게 남긴 수많은 상처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라고 말한다.

영화 ‘트럼보’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그의 생전 인터뷰는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카데미상을 받으시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13살인 딸이 있는데, 그 아이가 3살 때부터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내가 쓴 작품명을 다 외우고 있는 아이다. 10년 동안 그걸 비밀로 마음에 담고 살았다. 친구들이 자기 아버지 자랑을 하며 물어도 그 얘기를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빠가 진짜로 누군지, 하는 일이 진짜로 뭔지 다 알면서 막상 말을 못했다. 그걸 3살부터 숨겨온 강한 아이다. 만약 아카데미상을 받게 된다면 딸에게 줄거다” 라며 “이젠 짐처럼 지고 있던 비밀을 말해도 된단다. 우리 이름을 되찾았단다라고 말하겠다”는 화면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익명에 숨어 활동해야 했던 트럼보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인사 수백 명과 전국 수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부당한 표적 조사를 받았다. 대상은 교사·공무원·군인 거리낌이 없었다. 이들은 실직·파산·이혼을 하고 심지어 자살하기도하며 블랙리스트의 잔인함과 흉악함을 경험했다. “반미활동조사위원회는 1975년까지 민간인 조사를 이어갔다”는 내용으로 영화는 끝맺는다.

어떠한 설득과 협의의 과정도 없이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마당에 ‘사드’ 배치를 강요받는 성주 주민들의 정당한 항의에 대해 정부와 경찰청은 “외부세력 색출”이라는 말로 ‘성주’ 출신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며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사드배치가 한반도의 평화 및 주변국과의 긴장과 이해관계 등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안위와 평화공존을 최우선 기준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드배치 반대를 악의 세력으로 몰아 외부세력 운운하며 국민들을 분리 고립시키는 상황이 낯설지 않다. 영화 ‘트럼보’를 보는 내내 느꼈던 불쾌함과 불편함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다시 느껴지는 건 과민반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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