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좌읍귀농귀촌협의체 회장
얼떨결에 덜컥 맡은 직함
책임감에 의욕 앞서 실수와 실패
지역 내 개인적 연결 감정 간과
이제는 소통과 함께 즐기기
협의체 커뮤니티 기반 결합 중요
제주시귀농귀촌협의체 부회장, 구좌읍귀농귀촌협의체 회장 최근 몇 년 동안이나 맡고 있는 나의 사회적 직함이다. 회장이네, 부회장이네 하는 것이 꽤나 권위적이고 거북살스럽기 그지없다. 순식간에 5개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는 매우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책임지고 봉사해야하는 ‘자리’는 본래 내 취향이 아닌데 사연이 있다.
3년 전 어느 날 구좌읍사무소의 모임 연락을 받고 가봤다. 나 같은 이주민들을 모아놓고 구좌읍 귀농귀촌협의체 발족을 위한 자리였다. 이날 연령이 앞선 분이 회장으로 추대 됐지만 자격 여부를 놓고 극구 고사를 하신 통에 덜컥 회장 자리를 맡게 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갑자기 공적 업무가 발생하면서 ‘셀프책임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부작용의 연속이었다. 이주민들의 정착에 일자리 확보가 중요할 거라며 협동조합을 구성해야한다고 혼자 쫓아다니며 힘 빼고, 이주민들끼리 서로 잘 지내야 한다고 정기 바비큐파티를 주선했다가 아내만 뼈 빠지게 고생시키고, 우리 카페에서 여는 음악회를 순회 개최하겠다고 동네방네 찾아다니다가 괜한 짓 말라는 소리만 듣고, 마을미디어 한다고 열심히 준비하다가 ‘갑질한다’며 오해받고….
뭐하나 뚜렷이 잘 해 내는 것도 없이 나섰다가 결국 “저 사람 정치할 건가봐”라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정치인이 됐다. 온통 실수와 실패로 채워지고 있는 이주민단체장의 엉망 활약상이다.
‘커뮤니티(community)’의 사전적 의미는 공동체·지역사회 등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이 매우 다양하게 적용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첫 번째가 사회조직체로서 공간적·지역적 단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단위와 관련되는 심리학적인 결합성 또는 소속감을 표시하는 것이 두 번째다.
전자는 취미든, 취향이든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작은 규모지만 공통적 관심이 비교적 밀착돼 온라인에 ‘카페’라는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 카페의 개념에는 지역적인 영역, 상당한 정도의 개인적 친숙함과 접촉, 그리고 이것을 타 커뮤니티와 구별시켜 주는 특별함이 함축돼 있다. 이래서 나의 동호회 가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커뮤니티(카페)의 자급적 능력은 사회에 비해 훨씬 제한돼 있지만, 그 한계 내에서 보다 밀접한 관계와 깊은 상호이해를 갖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개인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감정과 태도의 총체를 의미한다. 사람을 사귀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동호회를 거친 후 귀농귀촌협의체를 통해 이웃 간 행복한 삶을 실현해 보려했던 나의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명백하다. 동호회는 커뮤니티지만 귀농귀촌협의체는 명백한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사전적 의미처럼 ‘특정한 관심을 추구하며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인 것이다. R.M. 매키버가 설파한 대로 커뮤니티다운 인위적, 계획적으로 형성되는 결합체로서 일정지역 내에서 개인적으로 연결되는 감정을 간과한 것이다.
이주민들은 자연발생적인 커뮤니티를 통해 강한 공속감정(共屬感情)이 지배하고 있는 혈연적·지연적 공동생활이 존재하는 지역사회에 녹아져서 편입된다. 그런데 ‘어소시에이션’으로서 귀농귀촌협의체는 신뢰가 동반된 지역민으로서 채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특정한 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원치 않는 결합관계로 사람들을 내몬 결과가 되는 것이다. 심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편할 수가 없다. 편하게 살아보려고 살던 곳을 저버린 사람들인데.
마음을 다잡은 요즘은 협의체 따위는 거론도 않는다. 다만, 사람들과 소통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함께 즐기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생존만을 꿈꾸는 미생물처럼 사람들을 만나면 함께 나눌 인간다움과 즐거움에 집중한다.
거기에 상호간에 고민하고 협의하는 어소시에이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셀프책임감으로 매달렸던 시간보다 1분, 1초라도 이웃으로서 시간을 채우고 평생을 추억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커뮤니티의 소산일 수 있다.
지역주민과 이주민의 결합 형태는 분명 커뮤니티에 기반을 두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화학적 결합이 선제 조건이다. 서로에게 호감과 나눔이 동반돼야 한다. 목적을 위한 결합체 어소시에이션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