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가’하면 ‘자유’ 연상할 듯
창조적으로 자기 작품 하니 당연
열정·양심으로 창작해야
예술 철저한 인간적인 것의 표출
진실한 작품이 대중과 공감
유명세 떠나 예술가 ‘땀’ 인정하자
미술계가 큰 ‘홍역’을 앓고 있다. ‘조영남 대작’ 논란 사건에 이어 ‘이우환 위작’ 논란까지. “예술가란 무엇인가?” “예술가의 양심은 무엇인가?”라는 쉽지 않은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져놓고 밤을 새웠다.
‘예술가’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라고 하지 않을까? 주문에 의한 작업과는 달리 자신의 창조적 생각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 예술가와 자유의 결합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예술가란 어떤 존재이고, 예술적 창조성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아주 오랜, 긴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히 많이 변했다. 오늘날 우리가 창조적인 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정신사적 과정의 산물이지만 불멸의 진리는 아니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지배적 사조(思潮)에 따라 예술의미는 달라져왔다. 그 예술가의 축적된 변천사와 전통이 지금까지 전해져 우리가 떠올리는 예술가의 상을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가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 혹은 최소한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로 인식된다. 동시에 인간은 누구나 예술가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도 존재하고 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자신의 작품에 담는 것이며 자신의 양심을 따름으로써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예술가의 창조는 곧, 자유로운 자기표현인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 즉 작가가 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오늘날의 불확실성과 확실한 지지기반이 없는 불리한 현실 사회 체제에 작가들은 언제나 힘들어 하고 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작업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그리고 그 길 안에서 ‘과정’이라는 창조의 경험은 예술가 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듦으로써 예술창조의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작가들은 프라이버시보다는 퍼블리시티가 더 필요하고 그래서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지기를 원한다. 그래야 그만큼 자신의 자신이 더 많이 알려지고 작품이 더 팔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은 새로운 작품으로 개인전을 연다. 그래서 관람객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놓고 대화를 갖거나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예술은 철저히 인간적인 것의 표출이 아닌가 싶다. 예술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순간순간 바뀌어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우리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간혹 남의 것을 따라하거나 남들이 이해 못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식의 ‘남달리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잘나가는 소수의 작품을 대할 때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그들은 예술의 안락한 테두리 안에 안주하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거나 자신의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인간적이라는 것이 굳이 사회적 이슈가 아니더라도, 예술은 자신의 감동을 타인과 조금이나마 나누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인간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무엇에 감동하는지, 그것이 스스로에게 과연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예술가 각자 고민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속의 유명한 작품들은 감상하면서 정작 오늘날의 작가들에게는 인색하다. 그러기에 오늘의 예술가들은 외롭고 힘들다.
우리는 ‘예술가’들의 부단한 노력과 수고와 땀을 이해하는데 인색하다. 그저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평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이라도 미술관으로, 갤러리로 걸음을 옮겨 낯선 예술가와 만나보시기를 바란다. 인간을 극복하고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그 영혼의 삶을 그려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삶이며 양심이다. 유명과 무명, 인정받고 못 받고를 떠나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고통스러운 노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