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제주지사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제주도의 강한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산하단체도 아닌 타 조직의 수장(首長)을 뽑는 일에 지자체가 ‘감 놔라 배 놔라’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란 지적이 많다.
적십자제주지사는 현 김영택 회장의 임기가 8월 초 만료됨에 따라 후임 회장(제33대)을 선출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이를 위해 지사 운영위원회를 열고 5명의 추천위원을 구성했다. 이어 회장 후보자 접수 마감일을 지난달 31일까지로 정해 예비후보자 접수를 받았다.
이에 김영택 현 회장은 연임(連任) 의지를 밝히며 5월16일 일찌감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마감 당일까지 추가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자 김 회장의 단독 출마로 굳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마감 3시간 전 당연직 추천위원인 제주자치도 모 국장이 K씨를 후보자로 접수, 2파전 양상이 됐다.
‘외압(外壓)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보다 앞서 제주도 고위급 인사가 김 회장을 만나 ‘모종의 언질’을 줬다는 점이다. 이에 불응하자 마감이 임박한 시점에 제주지역 모 단체 회장을 맡고 있는 K씨를 내세웠다는 게 ‘도정 압력설’의 전말(顚末)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K씨의 경우 법인에서 적십자 회비를 낸 적은 있으나 개인자격으로 납부한 실적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자격’ 시비가 일었다. 적십자사 규정엔 개인자격의 회비 납부 실적이 있어야 회장 자격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선 법인에서 회비를 납부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과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상태다. 급기야 제주지사는 해당 사안을 대한적십자사 심의위원회에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차기 회장 선출을 둘러싼 분위기가 막판에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K씨를 추천했던 제주도 모 국장은 이달 15일 예정된 추천위원회 회의에 불참(不參), 추천위원 전부(5명)가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 상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김영택 현 회장의 사퇴를 종용하기 위한 제주도정의 ‘무언의 압박’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실로 낯부끄러운 일이다. 적십자제주지사 회장마저 도정(道政)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히려는 것은 구태의연한 구시대적 행태다. 혹여 아랫사람들의 ‘과잉충성’일지 모르겠으나, 이는 원희룡 지사를 소인배(小人輩)로 욕보이는 작태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