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전투’ 영웅 故강승우 중위 아들 강응봉씨
“어릴적 父훈장 자랑…바르게 살도록 노력해 와”

“나를 따르라.”
1952년 10월 12일 오전 까마귀 우는 백마 기슭. 강승우 소대장은 백마고지에 설치된 중공군의 기관총 진지를 폭파하기 위해 휘하 소대원 안영권, 오규봉 하사와 함께 폭탄을 짊어지고 적진을 향해 달려나갔다.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잠시 뒤 굉음이 터졌다. 열흘간 엄청난 희생자를 낳으며 악명이 높았던 백마고지는 그렇게 점령됐다.
23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레츠런파크에서 만난 고 강승우 중위의 아들 강응봉(66)씨는 한국 전쟁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백마고지 전투’에서의 아버지 활약상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때 아버지 덕분에 백마고지를 점령하지 못 했다면 휴전선이 30㎞ 뒤로 그어졌을 거예요. 서울이 북한땅과 바로 맞닿았겠죠.”
고 강승우 중위의 고향 집인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51번지. 강씨가 1950년 10월 27일 태어난 집이기도 하다. 강씨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이곳에 없었다. 3개월 전에 한국전쟁에 참전하러 떠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전쟁이 터지니깐 바로 자원하셨대요. 어머니가 나중에 말씀해주셨는데 남편을 다시 못 본다는 각오로 아버지를 보냈다고 하셨어요.”
결혼생활 3개월 만에 강씨의 어머니는 남편을 국가에 맡겼고, 21살의 나이에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철부지 소년이었던 저는 아버지가 받은 훈장들을 달고 학교에 자랑하러 다녔어요. 어머니는 그런 저를 엄하게 대하셨어요. 아버지처럼 훌륭하게 자라길 바라셨기 때문에 그러셨던 것 같아요.”
강씨의 어머니는 강씨를 홀로 키우기 위해 아침에는 물질하고 오후에는 밭일했다고 한다. 여름이면 전라남도에 가서 물질하기도 했다. 그런 강씨의 어머니는 오랜 물질로 인한 뇌 심근경색으로 1998년에 작고했다. “아버지처럼 훌륭하게 자라길 바라셨는데 제가 그 기대에 못 미쳤던 거 같아요….” 강씨는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강씨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려운 가정 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강씨는 학업도 포기하고 성실히 일 해왔지만, 1993년도에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하면서 전 재산을 날렸다. “정말 세상을 등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고 싶지 않아서 악착같이 살았어요.”
최근 강씨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제주대학교에서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어렸을 때 막연히 아버지를 통해 저를 돋보이게 하려고만 했어요.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아버지께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셨던 그 모습을 먹칠하지 않기 위해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죠. 지금은 남을 위해 봉사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나라를 지켰던 고 강승우 중위의 아들 강응봉씨도 그렇게 아버지의 삶을 따라가고 있었다.
강씨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후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전쟁이라는 그 비극을 잊어버리면 그 비극은 반복됩니다. 그리고 부디 우리 주변에서 남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