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7년 국가권력(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사건’ 피해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북한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기밀을 탐지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한 혐의(국가보안법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제주 출신 고(故) 강우규씨 등 6명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이들은 1978년 2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돼 사형선고를 받은 후 무려 38년만에 무죄가 인정된 것이다.
이 사건은 재일교포 사업가를 비롯한 제주교대 학장과 국회의원 비서 등 11명이 연루되면서 유신정권 말기 제주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던 사건이다. 16살에 일본에 건너가 45년 만에 귀국한 강씨는 1977년 ‘북괴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재일교포 사업가로 위장해 국내로 잠입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당시 강씨의 동생 강용규씨와 직장동료 10명도 함께 붙잡혔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이들을 계속된 구타와 각종 고문에 못이겨 중앙정보부 요구대로 진술서를 작성해야 했다. 함께 누명을 쓴 강씨의 동생과 동료들도 강씨에게 포섭돼 간첩활동에 대한 활동비 등을 제공받았다고 진술했다.
재판에서 강씨 등은 고문에 못 이겨 혐의를 인정했다며 진술을 번복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형사지법은 그해 6월 강씨에게 사형,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징역 3년~5년을 선고했고, 항소심에서 강씨를 제외한 피고인들의 형량이 감형됐지만 강씨의 사형선고는 항소심에 이어 이듬해 2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억울한 누명을 쓴 강씨는 무려 11년 동안 복역하다 198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일본으로 돌아간 후 2007년 숨을 거뒀다.
강씨의 사연은 피해자 중 일부가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원회)로부터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진실규명조사결과를 받으면서 재조명됐다.
강씨의 유족들은 뒤늦게 나머지 피해자들과 함께 법원에 재심신청을 냈고, 대법원은 2013년 11월 “불법체포와 감금, 고문으로 죄를 인정했다”며 서울고법에 재심개시결정을 내렸고, 2014년 12월 재심에서 “피고인들의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며 전원 무죄 판단을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