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나이, 달라지는 친구들”
“들어가는 나이, 달라지는 친구들”
  • 박인옥
  • 승인 2016.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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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안정되며 동창회도 본격화
‘일탈’ 경계하는 회칙까지
가까운 친구일수록 에티켓 중요

나이 들며 섭섭할 것도 없어진다
돈·긴 가방끈이 무슨 소용
각자 삶 잘 살고 건강하길 기원

“만석아! 너는 하나도 안 늙었네” “미자야! 너도 그대로야” “남편하고 이혼하고 계속 나와라. 내가 책임질 테니” “정말이야? 나 진짜 나온다” 버스를 전세 낸 듯 60세도 훨씬 넘음직한 남녀 여섯 분이 떠들고 있었다.

나이 들었는데도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보아 초등학교 동창들인 듯 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난 거라면서 서로 “하나도 안 변했다”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보니 영락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던데….

반갑기도 하겠지만 어찌나 시끄럽던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참다못한 어느 할아버지가 던진 “이보게들 초등학교는 자네들만 나왔어? 나는 두 번 나왔어!”라는 한마디에 모두 웃음과 함께 조용해졌다.

문득 초등학교 동창들이 생각이 났다. 툭하면 울던 울보, 수업시간에 국어책 읽기만 시키면 오줌 싸던 친구, 운동장에서 여자들 고무줄 놀이에 불쑥 나타나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던 개구쟁이들. 다 어디서 나이 들고 있을까?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코흘리개 시절을 지나 이제 가정도 안정되고 아이들도 성장 시켰으니 시간적 여유도 있고, 여기저기 동창회, 반창회가 소집되고 있다. 간간히 작은 문젯거리가 있기도 해서 나름대로 지켜야 할 에티켓은 있다며 회장이 밴드에 동창모임의 회칙을 만들어 올렸다.

그런데 대부분 금지 사항이다. 이를 테면 △남녀 간 이상한 감정 자제 △술 마시고 동창에게 새벽 전화 금지 △잘난 동창에 대한 쏠림 방지 △새벽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 자제 △학창시절 얘기 외 돈이나 긴 가방끈 자랑 금지 △노래방 마이크 전세 금지 △지나친 막말 금지 △성형한 친구 옛날과 다르다고 지적 않기 △빈번한 ‘번개’로 부담주지 않기 등이다.

가까울수록 친구 간에도 기본적인 것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고모임을 나가보면 유난히 난 척 하는 애들이 꼭 있다. “어머, 너 차 바꿨네?” “남편이 생일 선물로 하나 뽑아줬어.” 10분 거리에 사는 애가 굳이 차를 몰고 올 일이 있을까싶어서 “넌 동네 나갈 때도 차를 가지고 나가지?” 한소리 했더니 대뜸 “넌 그런 차도 없잖아”라고 한다.

“소형차 하나는 있어”하고 웃었더니 “그래? 얼마 줬는데” 하며 빈정댄다. 이쯤 되니 나도 “벤츠 사니 끼워주더라”하고 대꾸한다. 웃자고 시작한 말이 자칫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어서 좋게 마무리 하고 만다.

친구들에게 돈 있어 보이면 뭐할 거고 난 척하면 뭐하겠나? 친구끼리 잘났건 못났건 비교하고 따지지 말고 반가운 얼굴 보는 자체만 즐겼으면 한다. 그것이 친구이고, 그래야 친구일 수 있지 않은가.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나 “남편에게 구조조정 당했냐” “너 어쩌다 이혼 했냐?”고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세상 이야기나 하면 안 될까? 적어도 친구 앞에서만이라도 편할 수 있도록. 친구는 지적과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위로와 위안이 대상이어야 한다.

아주 오래전 결혼해서 지지리도 어려울 때 친구 아들이 돌이라고 해서 친구들 얼굴이라도 볼 겸 간 적이 있다. 애를 데리고 나서다 보니 사놓은 선물을 깜박 두고 간 게 문제였다. “어머 어쩌지? 아들 돌복 하나 샀는데 깜빡하고 두고 나왔네? 가자마자 준비해서 내일 우체국 문 열자마다 보내줄게.“

다른 친구들은 여기저기 돈을 걷어 축의금으로 넘겨주는데 차비만 달랑 있던 난 참 당혹스러워 얼굴도 붉어지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돈 낸 친구들에게만 떡을 포장해서 손에 들려주었다. 우연인지 나만 쏙 빼고. 안 먹어도 상관없지만 속 좁게도 그 일은 두고두고 내게 상처가 됐었다. 지금 같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겠지만. 그 당시 얼마나 섭섭했던지.

세월 지나 나이 50을 넘기고 보니 이해 못할 것도 섭섭할 것도 없다. 30대에는 왜 그리 섭섭한 것도 많고 자존심 상하는 것도 많았던지. 이제는 모두들 그저 어딘가에서 주어진 각자의 삶을 사랑하며 건강하게 살고 있기를 바래본다. 친구들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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