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특별자치도 슬로건 ‘사람중심’
물질중심과 대립되는 개념
‘사람’ 현실선 생산원가로도 전락
선도 위해 동네 가게서 자주 구입
보행자 친화적 안전 도로 덕분
결국 ‘사람중심’ 사람·경제 모두 살려
‘사람중심’ ‘환경중심’ ‘지식중심’이라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슬로건이 이제는 사람과 자연과 문화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로 발전했다. 사람중심은 물질중심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사람의 가치를 높이려면 다른 모든 가치가 그렇듯이 그 존재를 귀(貴)하게 여겨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 반대다. 현대 문명의 물질주의는 갈 데까지 치달았고 사람의 존재는 어떤 상품의 생산 원가의 한 항목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 회사가 어려우면 제일 먼저 손을 대는 것이 사람이다. ‘구조조정’이란 말로 포장된 해고다. 그러므로 “사람중심의 제주를 만들자” 또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자”는 제주도의 구호는 대단히 용기 있는 도전이다.
인건비를 원가의 하나로 인식하는 현재의 생산방식은 사물을 자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한 불가피한 것일 텐데 바로 그 점 때문에 현재 세계의 나라들이 경기침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건은 만들었는데 그것을 사 줄 구매력이 총체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대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것을 소득의 양극화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소득층은 버는 대로 대부분 소비를 위해 지출하지만 고소득일수록 지출하는 돈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형화의 물결이 거세어서 작은 자본으로는 어떤 사업에 손을 대기가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 영세 사업자가 30대 청년층에서는 늘어나지만 40~50대 장년층에서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 최근 통계가 영세사업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길이 없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아주 작은 희망의 징표를 아이러니하게도 금융 자본주의의 중심지인 뉴욕의 맨해튼 거리에서 목도했다. 대낮의 길거리에 아기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장을 보러 걸어가고 있었다. 유모차는 혼잡한 뉴욕 지하철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자 친화적 교통 환경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맨해튼의 높은 빌딩들 아래층에는 잡화점과 식료품 가게, 식당과 구두 수선집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다. 그곳에 들어선 아기 엄마가 구입하는 물건의 양이 ‘우리 예상과는 달리’ 많지가 않았다.
그리고 중산층 집인데도 냉장고가 우리나라의 보통 냉장고보다도 작은 듯 했다. 냉장고도 여러 날 지나면 신선함이 떨어지는데 가까운 구멍가게에서 수시로 신선 야채나 고기를 사올 수 있으니 작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람중심의 도로가 영세 상인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작을수록 고용효과는 크기 때문에 이것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중심의 도로가 일자리를 만든다는 점은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작년 말 파리 기후변화회의(COP21) 이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 대비 37% 감축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은 청정에너지의 ‘공급’만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다.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어 수요를 줄이는 노력이 동반돼야 가능하다. 물질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생활방식의 변환이 수반돼야만 이룩할 수 있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앞으로 인류의 장래는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와 기계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되는 인간의 욕구 속도의 경쟁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의 예언대로 소품종 대량생산의 방식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방식으로 시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에는 정해진 구두 사이즈에 사람의 발을 적당히 맞추었으나 앞으로는 제각기 다른 사람의 발에 구두 사이즈를 세분화하게 될 것이다.
물질 중심의 문명의 심층에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인간중심’의 저류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의 사람중심은 실로 시대에 앞서가는 노력이다. 그러기에 등하굣길에 아슬아슬하게 차도로 내몰린 학생들의 모습은 사람중심이 될 수 없다.
사람중심의 사회의 첫 출발은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좁은 길들을 일제히 인도로 부르는데 있지 않을까. 그래야 어린이도 살리고 영세상인도 살리는 사람중심의 제주국제자유도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