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잣성은 중산간 지대에 산재해있는데 원형으로 남아있는 하잣은 제주시 봉개동 산 71번지에 상잣과 이어진 간장(간담)과 북쪽으로 내려가면서 중·하잣과 연결되어 있으며 회천동 산 8·9·10번지에서는 동·서쪽으로 하잣과 2·3소장의 간장이 만나고 돌담 약 1.5㎞ 떨어져 돌담들이 연결되면서 이곳에 위 바령밭, 아래 바령밭, 사람이 살던 흔적 및 목자위전과 목장전은 둘레가 잣으로 쌓여 있으며 현재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또한 제주시 쓰레기처리장 입구에 건영농축목장에는 목지동산에 목자들이 제주마를 감시하던 초소(원형인 2평정도인 돌담)가 있다.
남제주군 남원읍 수망리와 표선면의 따라비오름 남쪽에는 갑마장과 10소장(영주산쪽)의 길게 남아있는 하잣성이 있다. 4소장의 하잣은 천마목장 북쪽 경계선이고 5소장은 한라목장과 장전제주마생산기지의 북쪽경계선과 일치하면서 서쪽으로 새별오름 북쪽을 거쳐 저지리의 마중오름 남쪽의 하잣성과 연결되는데 이곳에 하잣성이 남아있다.
중잣성은 남원읍 수망리 산 10번지일대 수령산(물영아리오름) 남쪽에 있는 잣성으로 남조로 동쪽은 여문영아리오름·대록산까지 겹담이고 높이 100~140cm, 폭 50~120cm이고, 서쪽은 의귀공동목장에 있는 민오름 뒤쪽의 남원·한남리 공동목장으로 이어지면서 상·중잣성이 합쳐져 여기서부터 홀담이었다. 남원읍 한남리 오름목장내에 있는 상잣성은 작은 하천에 81×72cm인 넓은 돌에 두 개의 구멍으로 물이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제주도 보물인 탐라순력도(숙종 28년: 이형상목사)에 그려진 산장구마, 교래대렵((橋來大獵)의 행사를 시행했던 산마장은 한라산 동쪽, 현 조천읍 교래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대경목장(2소장의 경계), 산굼부리(山仇音夫里), 성불오름(1소장과 10소장과 경계), 동남쪽의 남영목장, 대록산, 소록산에 있는 중잣은 제동목장과의 경계이고, 따라비오름쪽에 표시되어 있는 하잣과 남쪽 물영아리오름(수령산:습지보존지역:수망리마을공동목장), 여문영아리오름(토산마을공동목장), 구두리오름, 서남쪽의 붉은오름, 서쪽은(9소장) 의귀천과 민오름, 서북쪽의 바늘오름으로 둘러 쌓인 넓은 평지로 된 목장에 있는 이들 잣성을 쉽게 볼 수 있다.
잣은 진정 제주가 지닌 특색 있는 경관으로 마(馬)의 만리잣성(萬里長城)이라고 할 만한 곳이 남조로 상·중·하잣성, 미래항공관로 중잣성, 성읍민속촌 서북쪽(따라비오름)의 하잣성, 제주시 회천관광타운 남쪽의 하잣성 및 선잣, 교래대렵, 산장구마의 행사를 했던 곳인 성불오름 서쪽에 이러한 잣성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소장(목장)에 포함된 여러 자목장(字牧場)과 마을 공동목장, 우마(牛馬)의 성별에 따라 나누어진 목장인 것으로 추정되는 돌담들이 많이 있었다.
현재 산마장에 잣성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다른 10소장의 상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지역은 마을공동목장과 기업목장, 한국마사회육성목장들이 잣성을 목책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발 600m이상의 산림지대를 목장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장원을 쌓았던 곳은 국립공원지대이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런 잣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목축돌문화이며 제주목마장의 돌 울타리다. 울산광역시는 옛 목장인 남목마성(南牧馬城)의 높이는1.5~2m정도이고 둘레는 1930步인 돌담(城)을 울산기념물 제18호(1998. 10.18)로 지정보호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제주도내에 산재해 있는 잣성과 바령팟 등을 조사하여 목축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
김만일(金萬鎰:1550~1632)은 조선시대 선조 27년(1594) 제주마 500匹, 광해군 12년(1620)에도 500匹을 헌납(獻納)하여 헌마공신(獻馬貢臣)의 호와 오위도총부부총관직(五衛都摠府副摠管職:종2품) 및 인조 6년 직급을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 제수 받음에 대한 역사성 정립(歷史性 定立)과 그 후손들이 218년간 산장감목관을 세습하면서 준마(駿馬) 생산에 심혈을 기울려 관리함으로서 제주마가 동북아의 우수한 품종이 되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므로 제주도 말산업발전(濟州道馬産業發展)에 기여하고 있는 사육 농가와 연구자들에게 김만일상(金萬鎰賞) 수여(授與) 등(탐라문화제 및 제주마축제)과 남조로(南朝路:남원에서부터 조천까지의 길)를 김만일로(金萬鎰路:이곳은 조선시대 김만일 후손들이 218년간 83명의 감목관직을 세습하면서 관리한 산마장지대로 조천읍 제주도돌문화공원에서 남원읍 고사리꺾기대회장)로 변경도 검토해 볼 일이다.
제주도 역사는 제주마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목마장(牧馬場)의 잣성(城)은 우리 선조(先祖)들이 전생애(全生涯)에 돌을 줍고 나르고 쌓으면서 살아온 濟州道歷史의 산물인 제주마의 만리잣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이 진정한 한라산 기슭에 남아있는 진귀하고 특색 있는 경관(景觀)이다.
감목의 대행은 전래에 따라 헌마인 김만일의 성손 중에서 감당할 자로 전 감목 김영초를 택하여 신의 영에게 즉시 임명하도록 한 내용과 상하장원(상잣과 하잣)은 허물어지는 대로 수축하고 흩어져 잃어버린 말떼는 마필마다 몰아들일 것을 뜻하는 내용이 실려 있는 제주계록(헌종 12~고종 21년:道光 27年 9月 21日)
(제주도 목마장의 변천(4) 끝-다음호에 계속)
장 덕 지 교수
제주산업정보대학 관광생명자원과
(제주마문화연구소장·제주도문화재위원·제주마주협회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