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막을 수 없었던 ‘죽음’
경찰도 막을 수 없었던 ‘죽음’
  • 고상현 기자
  • 승인 2016.0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넉달간 면담 5번 ·모니터링도
폭행 있었지만 “괜찮다” 일관
가정폭력 전담 인력도 ‘부족’

지난 4일 제주 시내 모 주택에서 오모(45·여)씨가 술에 취한 동거남에게 폭행을 당해 숨졌다. 피의자 유모(49)씨는 올해 1월에도 술을 마신 상태로 오씨를 때리다가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유씨를 ‘가정폭력 특별 관리’ 대상자로 정하고 매달 방문·전화 면담 등을 해왔지만, 오씨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정말 막을 수 없었나

유씨가 경찰이 작성한 ‘가정폭력 재발 우려 등급’에서 가장 낮은 ‘우려가정’에 해당했지만, 경찰로부터 특별 관리를 받았던 것은 알코올 중독과 폭력 전과가 있어서였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원래 분기별 면담 대상자였지만, 알코올 의존증과 친동생을 폭행하는 등 폭력 전과가 있어서 특별관리 대상이 됐다”고 했다. 이에 경찰은 지난 4개월간 5차례 면담을 하고 수시로 전화 모니터링을 했다.

하지만 모니터링 과정에서 경찰이 오씨에게 “잘 지내느냐” “문제없냐” 등 형식적으로 상담하는 데에 그치면서 오씨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씨가 경찰 조사를 받은 1월 이후에도 오씨를 수시로 폭행했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나오지만, 오씨는 경찰과의 면담 때마다 “괜찮다” “아무 일 없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황정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는 보통 가족폭력을 자신의 내밀한 문제로 생각해 잘 말하지 않는다”며 “경찰이 질문만 했을 경우 피해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3년 여성가족부에서 내놓은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폭력 경험자 910명 중 68%가 폭력 행동이 일어난 당시에 ‘그냥 있었다’고 응답했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0.8%로 매우 적었다.

또 경찰은 피의자가 알코올 중독이 있어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조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재범 우려로 유씨의 가족을 설득해 지난 2월 29일 유씨를 제주시내 한 알코올 중독치료 전문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유씨가 완치되지 않은 채 한달 뒤에 퇴원했지만, 경찰은 재치료를 권고하지 않았다. 결국 2개월 뒤 만취한 유씨는 오씨를 때려 숨지게 했다.

■경찰 12명이 400여곳 관리

현재 이번 사건을 수사한 제주서부경찰서에서 가정폭력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가정은 400여 곳에 달한다. 하지만 이를 전담할 인력은 12명뿐이다. 사실상 전담 인력 1명이 평균 33곳의 가정을 맡은 셈이다. 이에 따라 가정폭력 우려 가정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황정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정폭력의 경우 재발 우려가 높아 해당 가정에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지만, 현재 한정된 경찰 인력만으로는 제대로 된 모니터링이 솔직히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사회 전체적으로 가정폭력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영식 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 과장도 “가정폭력 문제에 대해 주민들이 신고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예방과 대처에 어려움이 많다”며 “가정폭력에 대해 신고를 적극적으로 하는 등 이웃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