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치단체 문화행사 진정성 의혹
정치인들 세금으로 생색내기
공공(公共) 없는 공공예술 논란
예술가 제주이주 현황 조사 관심
니즈·고민 반영엔 아직 미흡
제주만의 창의적 사업 발전 기대
자치단체의 문화 정책은 민감하다. ‘문화’라는 것의 함의가 넓고 깊은 데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논란 여지 또한 그만큼 많다.
문화는 정치인들의 표 몰이에 매력적이다. 동네가 들썩일 잔치판을 벌인다거나, 그럴싸한 볼거리를 ‘문화 복지’로 포장해 제공하는 것은 흔한 메뉴다. 차기를 노리는 정치인들이 남의 돈, 즉 세금으로 생색내기 딱 좋으니 그렇다.
필자가 맡고 있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또한 이런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미 10여년 세월이 흘렀고, 트리엔날레로 5회째 진행 중이지만 진정성에 대한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질 못했다. 아마도 이는 태생의 한계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APAP는 뜬금없이 시작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5년 당시 자치단체장의 ‘고독한 결단’에서 비롯됐다. 시장이 선정한 예술감독은 안양유원지 일대에 이른바 공공예술 작품을 깔아 놓았다. 비토 아콘치·알바루 시자 등 거장의 설치 작품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흥미롭되 속뜻은 헤아리기 어려운 작품들을 들이는데 30억원 남짓 예산이 들어갔다.
첫 해 프로젝트 기간, 논란도 뜨거웠다. 이른바 ‘공공(公共) 없는 공공예술’ 논란이다. 공공 공간에서 공적자금 들여 벌이는 공공예술인데,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에서 시민은 철저히 배제됐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공공예술 본질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공공의제 결여·시민 소품화·작가중심 프로젝트, 작품(text)과 장소(context)의 부조화 등부터 미학적 허세와 과잉 논란에 이르기까지 논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듯 뭇매 맞아가며 이어져온 APAP가 벌써 5회째다. 10여 년 시간이 흐르면서 논란의 열기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래서 문제 대부분이 해결됐다는 건 아니다. 제기하는 쪽이나 지적당하는 쪽 모두 피로감이 높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피차 문제점 잘 안다고 보고, 서로 일단 휴전 국면에 들어간 양상이다. 휴전은 그야말로 잠시 쉬어간다는 것일 뿐, 논란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에 APAP라는 ‘뜨거운 감자’ 앞에서 좌불안석,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나, 고민은 깊되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이른바 ‘관 주도 사업’의 한계다.
최근 5년 사이 제주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덩달아 예술가들의 제주 이주도 크게 늘었다. 제주자치정부도 이주 예술가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여러 지원 정책과 사업을 내놓고 있다. 예술가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부터 기획 및 창작, 국제 교류, 예술작품의 향유와 유통 등 전반에 걸쳐 실효성 있는 지원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다. 3년 전인 2013년 제주문화재단이 내놓은 ‘문화예술가의 제주이주 현황조사’는 그런 고민의 구체적 징표일 것이다.
필자와 함께 일했던 직원도 참여한 ‘현황조사’는 당시 소문으로만 떠돌던 제주이주예술가들에 대한 첫 조사연구 작업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고 기대가 컸다. 제주이주예술가들의 바람(needs)이 과연 무엇인지, 그들의 처지와 고민은 무엇인지 등을 어렴풋이나마 들여다본다면, 제주의 예술인 지원정책 또한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다. 일련의 지원 사업은 관 주도 사업이되, 예술인(수용자) 중심의, 그들의 고민과 바람에 최적화된 제주만의 창의적 사업이 펼쳐질 것으로 봤다.
아직은 크게 다른 무엇을 포착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대만큼은 여전하다. 뭍과는 확실히 다른 상황이니 처방 또한 달라야 하며, 다를 것이라는 기대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몰려오는 곳이니 말이다.
물론, 뭍의 허다한 닮은꼴 예술인 지원 사업을 벗어나 제주의 특별한 상황에 조응하는 사업을 개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10여 년 APAP 여정이 그런 것처럼 관료 중심의 행정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그 어려운 일은 결국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제주 이주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제주는 풍요로워진다는 점에서 그런 불행한 상황은 오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