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현스럽다’ 그리고 ‘박근혜스럽다’
‘놈현스럽다’ 그리고 ‘박근혜스럽다’
  • 김철웅
  • 승인 2016.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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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책잡는 표현
소신 있는 정치인, 그러나 아집도
인간이어서 과(過) 있게 마련

박근혜 대통령도 ‘허언’ 문제
않을 거면서 할 것처럼 등
지시 하나면 될 일도 책임 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선 관행은 물론 상식에도 과감히 맞섰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연어가 종 보존을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 것처럼 그의 ‘철학’엔 ‘당위성’이 있었겠지만, 가끔은 ‘소신’으로 가끔은 ‘아집’으로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최대 덕목 가운데 하나는 권위의식 탈피가 아닌가 한다. 대한민국 권력의 최고,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티를 내지 않았다. 가끔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등 막말도 서슴지 않아 “격이 낮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가식의 권위보다는 진솔한 낮춤이 좋았다.

그랬기 때문에 4·3사건 당시 국가권력 의한 대규모 희생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2003년 10월31일 노무현 대통령(당시)은 제주도민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고 말한 뒤 고개를 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종종 불협화음도 야기했다. 대표적인 게 2007년 발생한 ‘기자실 대못질’을 통한 언론과의 충돌이다. 당시 정부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란 명목으로 기자실 통폐합 계획을 추진했다.

언론 독재라는 지탄이 쏟아졌다. 전국 47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은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 탄압”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국회 문광위에선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참여가 아닌 폐쇄정부”라고 질타했다.

이러다보니 ‘놈현스럽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노무현스럽다’에서 출발한 놈현스럽다의 뜻은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라는 뜻이다. 2007년 국립국어연구원이 한글날을 맞아 출판한 ‘사전에 없는 말-신조어’에 당당히 포함된 단어다.

당시 청와대는 국가 원수에 대한 모욕일 수 있는 표현으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특이한’ 성격에서 비롯된 행동을 표현하는 말로 이해했다. 네티즌들은 ‘자기가 보는 현실만 박박 우기거나 상식과 원칙을 맘대로 바꾸는 사람’ 등으로 풀이하기도 했다.

세상사 인간이 완벽할 수는 없어 노 전 대통령도 이러한 면에선 과(過)를 남겼다. 일반인이었으면 그냥 그렇게 넘어갔을 텐데 대통령이어서 더욱 책잡힌 것 같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도 신조어를 만들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도 않거나 못할 것이면서도 할 수 있거나 할 것처럼 한다’는 뜻의 ‘박근혜스럽다’.

대표적인 게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결정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열린 여·야 3당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요구가 나오자 “검토 지시를 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허언이 되고 말았다. 특히 4·13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로 형성된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를 모색하는 자리에서 나온 대통령의 약속인 만큼 지켜질 줄 알았다. 대다수 언론들도 그렇게 보도했다.

그러나 사흘 만에 국가보훈처는 제창 불허 방침을 발표했다. 와중에 청와대는 야당 등의 강력한 재고 요청에 “보훈처 결정사항”이라고 발을 뺐다.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으면 “안된다”고 해야 했다. 박 대통령이 의지가 있었다면 ‘하라’고 지시만 하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허 결정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지 않고 아랫사람(보훈처장)에게 떠미는 행위는 더욱 아니다.

그리고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때 박 대통령은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최후의 한 사람까지 구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결과는 ‘최초의 1명’도 구하지 못했다.

정말 심각한 ‘허언’이 아닐 수 없다. 지도자를 인용한 ‘누구스럽다’라는 표현이 긍정과 희망의 뜻이 담길 수는 없을까.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만델라’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런 지도자가 없다.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계속되는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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