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예술기관 ‘사회적 함의’의 공공성 추구해야
공공예술기관 ‘사회적 함의’의 공공성 추구해야
  • 안혜경
  • 승인 2016.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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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선진’ 뮤지엄 공공적 역할 ‘충격’
사회·정치·문화 상황 진솔하게 전달
우리나라 ‘정치성·편향성’ 노골적

부산영화제 위기는 ‘야만적 민낯’
강정영화제 대관 불허도 마찬가지
예술기관 존재 의미 모르는 무지

미국을 처음 여행한 1997년 여름, 거리에 넘쳐나는 홈리스(Homeless)들이 있는 경제대국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 홈리스 청소년들의 실상을 작가 ‘짐 골드버그’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사진 기록, 가출 후 부모와 주고받은 편지와 그들의 이동 지도, 지저분한 침구류며 마약 용기들에 심지어 총기류까지 모아 전시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의 특별전 ‘Raised by Wolves’는 내게 예술의 가치와 뮤지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강렬한 되새김 기준이 된 전시였다. 유명 예술가들의 평면작품들이나 입체작품들만이 아주 고상하게 전시돼 있으리란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공공예술기관으로서 미술관의 역할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소위 ‘선진’ 뮤지엄의 첫 체험이었다.

그 이후에도 뮤지엄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신뢰할만한 전시를 여행지 도시의 대표적 뮤지엄에서 만났다. 2009년 봄의 캐나다 토론토의 온타리오미술관(AGO)이다. 세계적으로 기억할만한 현대사의 사회·정치·문화적 상황을 시기별로 그룹지어 중요한 사건 사진과 내용을 소개하고 그 시기와 연관된 미술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예술과 사회의 연관성을 짚어볼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놀라웠다. 토론토 로얄 온타리오 뮤지엄(ROM)에서도 홈리스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홈리스 사진에 그들의 호소 글귀를 담은 대형 팻말을 제작해 도로와 맞닿은 뮤지엄의 입구와 전시장 이동구간에 세워두었다.

2013년에 아트스페이스·씨(C)에서 소개한 ‘제인 진 카이젠’ 작가가 우리나라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의 하나인 리움(Leeum)의 ‘아트스펙트럼 2016’에 선정돼 전시참여 중이다. “편향되지 않은 시각과 긴 안목으로 한국미술, 나아가 세계미술의 주역이 될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자 하는 아트스펙트럼의 기획 의도”에 걸 맞는 작가로 뽑힌 것이다.

제주 출생의 덴마크 입양아인 제인 진 카이젠이 한국작가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뚜렷한 업적 때문이다. 소위 ‘한국인 피’는 국적이나 상황 불문하고 환영받는 세속적 분위기와는 다른 차원이다.

해외 입양이라는 개인사를 ‘전쟁이나 식민주의 그리고 국가와 가부장 권력에 의한 역사적 경험들로 비롯된 억압된 기억과 트라우마’로 확대해나간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제주4·3의 억압된 기억의 흔적을 새겨낸 소설가·시인·연구자들의 목소리가 제주풍광을 담은 영상에 되새김질되었고 그 문제들이 현재 강정해군기지로 여전히 공전하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개인사에 남긴 상처와 흔적으로 공명하고 있음을 관람자들에게 또 하나의 예술사회사로 전하고 있다.

규모나 내용면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으며 부산시민은 물론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기도 한 영화제로 20년 째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가 ‘다이빙 벨’ 상영문제로 좌초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불완전한 구조를 받는 상황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부끄러운 ‘야만적 민낯’이다. 대대손손 내려오며 태어나 자란 땅을 해군기지로 접수당하며 심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벌금폭탄까지 맞은 강정마을에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가 평화의 불씨를 되살려내려 애썼다.

그런데 서귀포시 예술의 전당은 대관 신청 접수 후 한 달여를 끌다가 “전체적으로 정치성을 띠고 있고 편향성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공시설 대관은 부적절하다며 불허 방침을 통보했다. 영화제는 마을에서 개최되며 현실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히려 전국적으로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면서 직접 그 실상을 목격하게 만들었다.

상영작들은 뉴욕현대미술관과 칸느영화제 등에 초대되어 예술적 가치를 이미 인정받은 영화들과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함께’ 누리자고 권하는 ‘건전한’ 영화들이었다. 커피냐 홍차냐 음료 선택 자체도 정치적 문제가 될 수 있는 현실에서 예술의 정치·사회적 함의를 문제 삼는 공공 예술기관은 그 존재 의미를 모르는 부끄러운 민낯을 오히려 ‘정치성을 띤 편향성’으로 강렬히 드러냈다. 공고예술기관으로서 존재가치에 먹칠하는 일로 그 대관 규정이 다시 ‘오용’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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