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숲이 무너지면 건강을 잃는다”
“세균 숲이 무너지면 건강을 잃는다”
  • 김재호
  • 승인 2016.0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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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소독·살균에 너무 집착
몸에 필요한 세균까지 죽여
면역시스템 오류 아토피 등 초래

과도한 청결이 면역력 약화 원인
적당히 세균에 노출돼야 ‘건강’
우리 몸 100조 세균·곰팡이와 함께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멸균가습기 파동은 세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지나친 청결습관의 해악이다. 현대인은 ‘위생’ 이라는 이유로 ‘소독’과 ‘살균’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매일 수많은 항균제품들을 사용해 몸과 주변을 씻고 닦는다. 몸 청소를 위해 앓는 감기 몸살에도 항생제를 쏟아 붇는다.

대한민국은 항생제 처방률에서 OECD 국가 중 최고다. 며칠 전 북 유럽 출장 중 일행이 감기로 현지 병원을 찾았다. 감기약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고 따뜻한 물과 과일을 먹으라는 의사 처방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좋은 세균까지 모두 죽이는 우를 범하도록 의사들이, 신문과 방송이 조장한다. 결국 몸의 면역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 무해한 물질을 공격하고 이를 중지시키지 못해 아토피 비염·천식과 같은 심각한 면역 질환으로 발전한다.

‘좋은 세균’의 역할과 ‘좋은 세균’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기적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하루에 수십 번 손을 씻고, 씻은 손을 다시 세정제로 다시 소독한다. 멸균소독제 없인 불안한 백성들이다. 항균도마·항균세제 등 각종 항균제품들이 난무하고 있다. 전염병은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 면역질환들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청결해지기 위해 한 ‘살균’이 좋은 세균까지 죽이고 결국 몸의 면역체계까지 무너지게 한 것이다. 몸에는 100조가 넘는 엄청난 수의 세균이 살고 있다. 코 안에 900종, 입안에 1300종, 소화기관에는 4000종이 살고 있다. 인간의 몸은 세균 없이는 한순간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세균은 우리가 없애야 할 공격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다. 세균은 우리의 몸을 이루는 당당한 구성원이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심장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인간의 면역력은 많은 세균들과의 접촉을 통해 단련되고 더욱 강해진다.

건강한 생명체는 세균에 감염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세균에 감염되어도 면역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여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는 산도를 통과하면서 각종 좋은 세균을 뒤집어쓰는 ‘세균샤워’를 하게 되고 이 세균들은 아기 몸속에 자리를 잡고 면역력을 높여 준다.

“조금 지저분하게 살면서 장내(腸內) 세균을 살려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감염면역 전문가 도쿄대학의 후지타 고이치로 박사는 “현대인에게 알레르기 질환이 급증한 이유는 미생물들을 무조건 멀리하게 만드는 지나치게 깨끗한 사회를 지향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독일 뮌헨대 무티우스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깨끗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서독에서 천식과 알르레기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비위생적이고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동독지역에서는 오히려 어린이 천식 알레르기 환자가 거의 없었다. 면역체계가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 세균에 많이 노출된 아이일수록 천식과 알레르기에 덜 걸린다는 얘기다.

‘자연스러움’이 최선이다. 과도한 청결이 오히려 면역력을 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고 적당히 지저분하게 지내면서 좋은 세균과 바이러스 미생물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면역세포는 적당하게 병원균에 노출돼야 그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한다. 이는 군인이 전쟁이 없더라도 훈련을 통해 유비무환의 자세로 전쟁을 대비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질병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병원균과 수시로 접촉하는 것은 군인의 훈련과정과 같은 것이고 인체의 면역력을 증강하는 한 방편이다.

지나친 위생관념과 청결의식은 병원균과의 접촉을 통해 획득되는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항생제 남용과 MMR(홍역·볼거리·풍진) 예방접종으로 체내의 ‘세균 숲’이 무너져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얼마나 충격적인가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100조가 넘는 세균과 곰팡이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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