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는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인식이나 그 기록을 말한다. 또한 역사는 과거를 통해 오늘과 미래를 바라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때문에 ‘진실’이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보도에 의하면 제주경찰에서 작성 관리하는 ‘4·3’ 관련 자료가 오류(誤謬) 투성이로 드러났다. 적절치 못한 용어 사용도 문제지만 역사적 사실조차 임의대로 왜곡되어 있었다. 역사가 후세에 이어지고 전해지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바로 역사를 오도(誤導)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주경찰의 ‘순직경찰 현황자료’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자료를 보면 제주 4·3사건이 벌어졌던 1948년 4월3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경찰 141명이 순직(殉職)한 것으로 나와 있다. 원인과 이유야 어떻든 공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것이기에 이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어주는 것은 마땅하다 할 것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122명이 “공비와 교전 중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공비(共匪)’는 지극히 이념적인 용어로 ‘빨갱이’와 비슷한 의미다. 정부의 공식 문건인 ‘4·3 진상보사보고서’에는 공비 대신 ‘무장대’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외면하고 굳이 ‘공비’란 단어를 쓰고 있는 저의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역사적 사실’의 왜곡(歪曲)이다. 일례로 1948년 4월 무장대가 제주시 화북지서를 습격했을 당시 김모 순경이 “공비 약 1000여명과 교전 중에 순직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당시의 언론보도와 4·3진상보고서에는 무장대 14명이 그 교전에 참가한 것으로 나온다.
심지어 경찰자료 중에는 몇 십여명의 무장대와 싸운 사건을 두고 “3000여명의 공비와 교전(交戰)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4·3사건 전 기간에 걸쳐서 무장 세력은 500여명 선을 넘지 않았다”는 역사학자들의 연구와는 거리가 먼, 너무나 부풀려진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과도한 진압 등을 희석시키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록이라 하지만 도(度)가 너무 지나치다.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이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과거를 반성해야 미래도 밝은 법이다. 제주4·3에 대한 오류와 왜곡은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좀 더 떳떳한 경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