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주년 세계노동절에 부쳐
126주년 세계노동절에 부쳐
  • 김경희
  • 승인 201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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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정권이 ‘근로자의 날’로 바꿔
자기 노동에 권리 가진 노동자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할 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여러분! 노동자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가 무얼까요?”

보통 달력에는 5월1일이 ‘근로자의 날’로 표기돼 있다. 이 날은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유급휴일로 보장하도록 강제돼 있다. 근거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다. 그리고 5월1일은 ‘세계노동절(May Day)’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의 차이는 무얼까. ‘근로자의 날’이 5월1일로 제정된 기원은 130년 전인 1886년 미국 시카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 12~16시간 장시간 노동과 판자집의 집세도 버거운 수준의 임금을 받던 미국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경찰은 어린소녀를 포함한 6명을 발포, 살해하며 진압했다. 이후 경찰의 만행을 규탄, 30만명의 노동자·시민이 헤이마켓 광장에 모여 투쟁을 벌였다.

1889년 세계 여러 나라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인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한 미국 노동자들을 기념하고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서 5월1일 ‘세계 노동절’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126주년을 맞이하는 현재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노동절’을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23년 ‘노동시간 단축·임금 인상·실업 방지’ 등을 주장하며 최초의 노동절 행사가 열렸고, 해방 이후까지 5월1일 세계노동절을 기념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노동절을 당시 관변 노동조합인 대한노총의 창립기념일인 3월10일로 옮긴다. 반공이데올로기 속에 전 세계노동자가 단결하자는 세계노동절의 취지가 부정됐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노동절’이라는 명칭조차도 빼앗고 만다.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꾸고 매년 5월1일에는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일한 노동자를 ‘모범 근로자’로 뽑아 상을 줬다.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고, 정부와 경찰의 삼엄한 통제 속에서도 매년 5월1일 노동절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 1994년 정부는 ‘근로자의 날’을 5월1일로 다시 정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조차도 사용했던 ‘노동절’이라는 본래의 이름은 아직도 되찾지 못한 채 ‘근로자의 날’로 불리고 있다.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에 대해 많은 학생들은 답한다. “노동자하면 막노동을 하고 땀흘려가며 힘들게 일하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근로자는 육체노동보다는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노동의 가치에 경중을 매겨 평가하는 세태와 반공이데올로기 속에서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소위 ‘빨갱이’로 매도하고 왜곡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5월1일을 세계노동절로 정한 것은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기념하며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자’는 취지다. 현재도 노동절은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단결하고 연대하는 날이다.

어제 전국 곳곳에서 ‘126주년 세계노동절기념대회’가 개최됐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도 제주시 동문로터리에 조합원과 함께 기념대회를 가졌다. “노동개악 중단!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주35시간제 시행! 여미지-한라대 투쟁 승리!”를 요구하며 제주시청까지 행진을 벌이며 도민들에게 노동절의 의미에 대해 알렸다.

5월1일은 전 세계 노동자가 연대하고 투쟁하는 기념일이라는 취지에서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로 불리어져야 한다. 생산의 주체인 사람들이 근면 성실하게 시키는 대로 일하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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