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식 논란..."미군정 시기 '간첩' 어불성설"

제주지방경찰청사 내 제주경찰 추모 조형물에 4·3 사건 당시 순직한 경찰관들을 “대간첩작전 중 전사”했다고 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과 4‧3 희생자 유가족들이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문제가 되는 조형물은 제주지방경찰청에서 순직 경찰관들을 추모하기 위해 2011년 10월 6일 청사 복도에 설치한 것에 해당한다. 조형물에는 1948년부터 현재까지 제주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사망한 총 235명의 경찰 이름과 사망 날짜, 사망 원인이 적혀있다. 이 가운데 188명의 경찰이 4·3사건이 벌어졌던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대간첩작전’을 벌이다가 전사했다고 나와 있다.
김용철 제주 4·3연구소 연구원은 “4·3사건이 제주 남조선노동당(이하 남로당)의 무장봉기로 발단했고, 그 기간 경찰들이 남로당 유격대와 교전 중에 사망하긴 했지만, 이 기간 어린이, 노인 등 많은 민간인이 경찰들에 의해서 희생당했다”며 “4·3 사건 당시 순직한 경찰들을 ‘대간첩작전’ 중 전사했다고 표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양시영 4‧3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도 “민간인이 그 당시 경찰에 의해 많이 죽임을 당한 만큼 간첩이라는 단어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군·경 토벌대가 4·3사건 민간인 희생자 1만4028명 가운데 1만955(78.1%)명을 죽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10세 이하 어린이 814명(5.8%), 노인 860명(6.1%), 여성 2985명(21.3%)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돼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과도한 진압작전이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양조훈 전 제주 4·3 중앙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간첩’이라는 표현에 대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쓰던 방식으로 표기하다 보니깐 용어가 적절하지 못하게 사용된 거 같다”며 “2003년에 정부 주도로 작성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 뒤로는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단어에는 보고서 내용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다. 보고서에는 ‘무장대’로 표현돼 있으므로 간첩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추모 조형물 내용에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간첩은 외부세력(적)과 연결돼야 하는데 남로당이 북한과 연결됐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대간첩작전이라는 용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특히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 이전인 ‘미군정’ 시기에 간첩작전을 벌였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최근 ‘4‧3과 미국’을 펴낸 허상수 제주사회문제협의회장도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그해 9월부터 3년간 미군의 군사통치가 이어졌다”며 “그 시기의 경찰은 대한민국의 경찰이 아니라 미군정의 경찰이기 때문에 현재 제주경찰 추모 조형물에서 그 기간 순직한 경찰들을 ‘대간첩작전 중 전사’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제주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오래된 경찰 자료에 4‧3사건 당시 순직 경찰들이 ‘무장공비와 교전 중에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추모 조형물을 만들다 보니 대간첩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거 같다”며 “제주지방경찰청 내부에서 순직 경찰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 4‧3사건 희생자들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