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국회의원 배려 없는 정치권
저소득층 대상 등 정책 위축 우려
상담기법 중에 ‘동료상담’이 있다. 중증장애인들이 서로 상담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장애로 인한 사회적 어려움을 제일 잘 아는 이는 당연히 자신이고 조금 더 넓혀 처지가 비슷한 사람 사이 상담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장애인정책도 장애인 당사자가 그리는 그림은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다. 비장애인의 감수성이 발달돼 있다고 해도 간접경험과는 차이가 있고 자신의 욕구와 요구를 제일 잘 아는 것은 자신일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중반은 민주화 이후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단체가 ‘대상에서 주체로’의 슬로건 하에 정치세력화를 모색한 시기였다. 사회적 소수의 인권을 중시했던 김대중 정부를 시작으로 국회에 장애인당사자의 정치참여가 일부 이루어져 왔다. 그 통로는 주로 비례대표였다. 이후 장애감수성의 시각에서 장애인정책을 그려 내는 게 가능했고 정책적 성과도 있었다고 본다.
제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13 총선이 끝났다. 국민의 절묘한 심판은 여소야대의 지형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이번 총선에는 비례대표 ‘장애계 당선자’가 없다.
비례대표가 무엇인가. 비례대표 폐지론자들도 있지만 상식선에서 비례대표의 취지는 지역구 당선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 등을 위한 정치 등용문이다. 16대부터 19대까지 원내구성 정당별 1명 정도는 당선안정권에 배치돼 왔다. 그 관례가 무너진 것이다.
왜 20대 총선에서는 단 1명도 배출되지 않았을까. 우선 자업자득이다. 각기 관행대로 편을 갈라 정치적 연줄을 대었으니 사회적 소수가 표가 되겠는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거대정당이 소수의 장애인표를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
비례대표 1석이 없는 현실에 대한 장애계의 비판에 대해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은 상이군인이 2번에 배치돼 있다고 했다. DMZ에서 부대원을 구하다가 지뢰를 밟아 장애인이 된 분으로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장애계의 정책과 입장을 대변해온 분은 아니다.
생물학적 장애인이라고 해도 삶의 궤적과 사고가 보편적 장애대중과 맞지 않다면 장애감수성은 떨어진다. 장애인단체에 비판받는 정당은 여당보다 진보적이라고 평가하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장애인당원을 포함한 비례대표 신청 후보 면면이 전문성과 추진성이 검증된 후보들이 많았다는 평가였기에 더 그렇다.
이에 대해 더민주당 대표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인정책을 잘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말은 그간 장애인국회의원이 능력이 별로였거나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에게 위임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인식이 배어 있다. 서양과 같이 장애를 가진 당원이 몇 십 년에 걸쳐 훈련되어져 각료(영국 블레어 내각의 내무장관 블런킷은 시각장애인)로 진출하거나 지역구에서 당당히 당선 가능한 환경이 아닌 한국사회의 현실상 매우 불쾌한 언사다.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것은 절묘한 국민의 심판 뒤에 정치는 강자들의 독과점 품목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뒤로 회귀했다. 앞으로 장애인계의 단결 없이 정치통로 마련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자치단체의 유사중복복지사업의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신장장애인 투석을 포함한 의료비 지원, 장애인의 신변을 돕는 활동보조시간추가 지원, 장애인고용장려금 추가지원 사업 등은 정부가 시행하는 사업이니 폐지토록 하고 있다.
말이 권고지 요구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부세도 감액하겠다고 한다. 이유는 중복사업예산을 복지사각지대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자치단체의 보완적 사업에 왜 그리 간여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저소득층 장애인 생존권이 걱정된다. 다행히 제주지역 총선 당선자 모두는 이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당선자의 생각에 깊이 지지하고 실천해주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계를 대변하고 선도할 장애당사자가가 국회에 없다는 것에 대해 심히 자괴감이 드는 제36회 장애인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