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군 손해배상 34억원 청구
주민에 빌미 제공 행정은 ‘무책임’
형평·정의 안맞고 주객전도 처사
도정도 마을주민엔 무관심
구상권 문제 지방행정이 나설 때
공동체 구성원 관점서 접근해야
해군이 최근 엄정한 법집행 차원에서 강정마을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구상금 34억원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집행이라는 당국의 조치에 대해 제3자가 여타 부타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모든 분란을 법치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 또한 반드시 옳은 일처리 방식이 아니다.
사실 다소의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간의 드러난 여러 사례에 비추어 공사지연 등의 강정문제가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님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인·허가 당국이 해군기지 입지 선정 과정부터 취한 일련의 조치들 중에는 강정사태에 빌미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법 타당하게 행정절차법 등이 준수되고, 공동체 다수의 총의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솔함이 평화로운 공동체를 와해시켰고, 불가피하게 공권력과 대치하는 상황 또한 발생케 했으며, 공사가 지연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처럼 사태의 원인의 제공자이기도 한 인·허가당국의 어설픈 여러 조치 등은 크게 문제 삼지 않은 채, 공동체구성원 다수의 개별 또는 집단적 행위에 대한 구상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은 위민행정의 근본에서나 형평(衡平)내지 정의(正義)는 물론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헌법적 관점에서 결코 옳아 보이지 않는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법치집행조치가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갖게 한다.
이런 단언(斷言)은 “입지 선정부터 각종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 없이 공사가 강행됐고 공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들어 마을회 등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문제”라고 하는 지역시민단체의 성명을 통해서도 대충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격노한 마을회 구성원 등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후보로서 “정부와 타협하여 원만한 절충적 해결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약속했던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일언지하 거절당했다. 마을회는 이에 즉각 반발했고, 사태가 악화되어 천막농성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들은 “도지사 자체를 부정한다”는 극단적 메시지까지 발표했다. 도의회와 시민단체 그리고 지역 언론사설은 일제히 해군당국을 향해서 대승적 차원에서 소송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물론 아직 그 반향(反響)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고 있다.
어떻든 이 와중에서 해군기지는 완공, 군항으로서 위용을 자랑하며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도정은 해군기지 주변지역에 대한 개발 구상을 넌지시 제시하고 나섰다. 이는 또한 제2공항 개발과 더불어 강정군항의 기능 확장을 통한 세계적 해상크루즈관광 요충지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강정지역개발 마스터플랜이다.
문제는 제주도정은 위와 같은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도 강정개발의 실현 가능성 여부나 마을 공동체 구성원의 생사화복에 대하여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기회 있을 때마다 국가차원에서 국방강화를 통한 국민 안위와, 지역개발 차원에서 크루즈관광활성화를 통한 경제활성화라는 2가지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해군기지건설의 당위성과 강정지역 개발의 중요성을 부각하는데 매우 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상금 청구소송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관점에 따라 소송 철회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기성고가 된 기지시설을 원상 복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검토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최적의 해결방안을 발췌한 후에 행정 주도로 타협과 조정과정을 거쳐서 모든 문제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일괄 타결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됐으면 한다. 그 결과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지속가능한 평화적 질서가 강정에 드리워졌으면 한다.
조그만 강정마을 공동체나 구성원들에게 34억 원의 구상금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마을회관을 팔아도 감당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행정차원에서는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여지가 열려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점에서 지방행정은 제3자의 입장에서 수수방관하기보다는 당사자 관점에서 위민행정의 근본에 따라 시간을 내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안위를 걱정하는 따뜻한 행정을 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