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국회의원 선거 마무리
공천 계파싸움에 정책·비전 실종
‘사과 쇼’ 횡행 특이한 총선
일각선 ‘최악의 국회될라’ 우려
당선자 절박함·초심 잊지 말아야
정치발전 유권자 마인드도 중요
“선거만 끝나면 노예제가 시작된다. 뽑힌 자들은 민주를 잊고 언제나 국민들 위에서 군림했다.”(존 애덤스, 미국 제2대 대통령)
정치와 선거의 속성은 동·서양이 비슷한 모양이다. 선거 때 ‘유권자-후보’는 ‘갑(甲)-을(乙)’ 관계다.
자발적이긴 하지만 을도 그런 을이 없다. 동네방네 다니며 90도 ‘폴더 인사’는 기본이다. 유권자가 부르면 어디든 달려간다. 목욕탕 때밀이 스킨십 등도 불사한다. 후보 가족들도 따라서 을이다. 하지만 투표가 끝나는 순간 관계가 역전된다. 유권자가 을이 된다. 유권자가 갑일 때는 선거철뿐이다.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총선이 끝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였다. 총선에서 여·야 간, 당내 계파 간 반목과 대립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했다. 첫 단추부터 꼬였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이 법정시한을 140여일 넘겼다. 유권자들이 자기 지역 후보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졌다.
공천 과정에선 계파 싸움이 극에 달했다. 정치권의 추한 민낯이 드러났다. 유권자 시선은 아랑곳 않고 미운 후보 찍어내기, 비례대표 명단 뒤집기 등 ‘사생결단’식 권력 투쟁을 벌였다. ‘패권공천’ ‘셀프공천’ ‘옥새 파동’ ‘도끼 시위’ 등의 신조어(新造語)가 언론 지상에 오르내렸다. 여·야 할 것 없이 막장 드라마가 펼쳐졌다.
정당들이 공천 싸움에 골몰하면서 총선 정책과 비전은 실종됐다. 공약다운 공약이 없다보니 선거 전략 또한 얄팍했다. 역대 선거에선 보지 못한 ‘사과 쇼’가 줄을 이었다. 새누리당 대구 지역 후보들은 단체로 길바닥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봐서 미워도 다시 한 번’ 읍소작전을 펼친 것이다. 어떤 후보는 ‘삭발 사죄’를 감행했다. 김무성 대표도 선거운동 기간 “사과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광주를 방문해 5·18묘역에 무릎을 꿇었다.
중앙 정치권의 흐름은 지방의 선거전에도 영향을 줬다. 제주지역에서도 별다른 이슈 없이 후보 간 잡담 수준의 공방만 난무했다.
부동산투기 의혹, 재산누락 허위신고, 자녀 재산증식 문제 등이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됐다. 상대 후보에 대한 검증 노력은 돋보였으나 도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뽑힌 사람들이 국회에서 제대로 일을 할지 걱정된다.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로 비난받고 있는 19대 국회보다 나아질까. 호사가들은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새 출발에 희망을 걸어본다. 이번 당선인들이 선거운동 기간 무릎 꿇고 사과할 정도로 절박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겸손함과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 정치는 분명 좋아질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당선자인은 선거기간 파악한 민심을 토대로 훌륭한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권력에 취해 ‘갑질’의 달콤함만 탐닉하다간 4년 후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을’이었던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 발전에 유권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치인이 시원치 않으면 그들을 뽑아준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추동할 책임은 유권자에게 있다.
존 애덤스 말에 따르면 투표일은 유권자가 잠깐 주인 행세를 하다 노예로 전락하는 날이다. 그렇게 돼선 안 된다. 4년 내내 ‘을(乙)’을 자처해 정치에 무관심해서는 정치 발전은 요원하다. 정치인들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공약 이행 등을 압박해야 한다.
4·13 선거 잔치는 마무리됐다.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인도의 네루 수상은 “정치란 국민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고 했다.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처럼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한 봉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주지역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갈라진 도민 화합과 지역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