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아름다운 것들”
“잊혀져가는 아름다운 것들”
  • 김은철
  • 승인 2016.0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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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라진 건축물 아쉬움
김중업의 ‘헬리콥터’ 건물 대표적
추억의 명소 개발에 밀려 철거

4·3 관련 유물·유적도 비슷
경제적·정치적 논리의 희생양
바람직한 보존방향 재정립돼야

하얀 제주의 왕벚꽃이 지금쯤 지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급해 잎도 채 나기 전에 피어 왜 그리 일찍 떨어지는 지. 지난 주말 왕벚꽃 축제도 끝났다. 이제 큰 비가 한번 오고나면 ‘봄눈처럼’ 흩날리며 봄의 한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이처럼 매년 이맘때는 수많은 꽃들이 피어 봄이 왔음을 온천지에 알린다. 벚꽃은 물론 개나리·진달래·목련,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꽃들도 얼굴을 내밀며 겨우내 웅크렸던 우리네 마음을 새로운 설렘으로 이끈다.

최근에 세계건축계의 봄꽃처럼 설렘을 주던 거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나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설계자이자, 중동 이라크 출신 여성으로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별세했다. 향년 65세로 최고조의 작품 활동시기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죽음이다.

고인은 기존 현대건축의 틀을 일탈, 특히 곡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유분방하고 생동감 넘치는 건축언어를 구사해서 전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초창기 작업 대부분은 ‘현재의 기술력’으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상 단계에 그쳐야 했다. 2000년 이후에 건축기술의 발달로 인해 비로소 그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현실화됐고, 유수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발표했다.

자하 하디드는 남성 중심의 건축계에서 여성 최초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축가다. 건축계의 모든 매체들은 그의 죽음을 톱뉴스로 지구촌에 알렸다. “건축가로서의 천재성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건축계의 오랜 편견과 싸웠기에 그녀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비록 그녀는 타계했으나 위대한 정신과 업적은 건축을 접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있을 것이다.

그녀의 타계를 애도하며, 문득 제주도를 대표하는 많은 건축작품들 중에 이미 허물어져서 이름정도만 겨우 알려지고 있는 ‘김중업 건축가의 구제주대학교 본관’을 떠올려본다. 일명 헬리콥터 건물로도 알려진 이 건축물은 제주도를 찾는 건축순례자의 첫번째 단골코스였다.

제주올레가 알려지기 전에 제주를 홍보해주던 건축물중 하나였다. 제주도민들도 이 건물에서 수많은 낭만과 추억들이 깃들어 있었으리라 본다. 필자인 본인도 어렸던 중학교시절에 주변에서 친구들과 놀이도 하고, 미술 숙제였던 풍경화를 그렸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개발우선이라는 경제논리로 대변하던 시기에도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는 소수의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철거돼 사라져버렸다. 이외에도 수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철거됐고, 그래서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당시를 회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엊그제 뉴스에 4·3사건 관련 유물과 유적지들이 무분별하고 성급한 개발로 인해 제대로 발굴과 보존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무차별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다시금 내 고향 제주도의 건축문화 정책에 대해 되돌아 보아야할 시기라 생각한다. 세계각지의 유명한 관광지들은 저마다 고유의 독특한 특색으로, 관광도시로서의 입지들을 다져왔다.

우리 제주도 또한 지속적이고 꾸준한 노력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잘 보전되고 가꾸어진 제주도만의 특색을 간직한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관광제주도를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유산들이다.

연일 매스컴에서 개발논리와 보존사이의 소모적이고 격렬한 논쟁을 접하면서 바람직한 개발과 보존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대부분의 모든 지자체는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과 홍보를 위해 수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가면서 다양한 정책과 아이디어들을 개발하고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보전 없는 경제적·정치적 논리에 의한 개발은 지지받기가 어렵다. 일단 철거를 해버리면 원형을 복원하는 데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수반된다. 설령 복원된다 해도 의미가 전과는 다를 것이다. 잊혀져가는 아름다움이란 후손에게 추억이 아닌, 그 현장에서 직접 공유하게 하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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