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인다성은 돌담 아닌 지켜야 할 역사”
“4·3 인다성은 돌담 아닌 지켜야 할 역사”
  • 백윤주 기자
  • 승인 2016.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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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마을 사람들, 마을 소실 폐허 뒤 성 만들어 생존
김명석씨 등 주민, 개발 바람 철거 위기서 인다성 ‘구출’
▲ 택지개발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인다마을4.3성(오른쪽). 현재 약 20m 정도 남아있으며, 마을에서는 ‘보전’ 결정을 내려 정비작업을 펼치고 표석과 함께 소공원을 조성했다. 백윤주 기자 yzuu@jejumaeil.net

제주시 아라1동, 아파트단지·오피스텔 등 각종 건축 공사가 진행 중인 이곳에는 주변과 ‘어울리지 않은’ 길이 20m의 돌담이 있다. 돌담 끝자락엔 무언가 세워져 있다. “…아라동 택지개발지구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 더욱 안타깝다. 다시는 이 땅에 4·3사건과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이 표석을 세운다.” 이 돌담은 ‘인다마을 4·3성(城)’이다.

아라동에 있던 ‘인다마을’도 4·3사건의 피해를 입었다. 1948년 11월 소개령 이후 군경 에 의해 마을이 불에 타 없어졌다. 피난을 떠났던 마을 주민들 이 다시 모여 1949년 5월 아라국민학교 터를 중심으로 성을 쌓았다. 동서로 약 150m, 남북으로 약 200m 직사각형 형태의 성 안에서 주민들은 고초를 겪으며 마을을 지켜왔다. 이게 바로 인다성이다.

인다성은 새마을운동 등 세월을 거치며 현재 아라원신아파트 뒤쪽으로 20여m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마을사람들이 지켜낸 덕이다. 2009년 아라동이 택지개발 공사 등으로 들썩이며 20m 남아 있던 인다성 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라동 토박이 김명석씨(52·아라동주 민자치위원회 간사)가 발벗고 나섰다. 그는 “아라동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가 사라질 운명이었다”며 “특히 인다성은 아라동과 4·3의 아픈 역사를 알리는 교육 장소로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호소했다.

마을 주민 간에도 찬·반의 논란이 없지 않았으나 마침내 ‘보전’ 결정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2014년엔 아라동주민자치 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우리마을 바로알기’ 특화사업으로 진행, 표석을 세웠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아라동이 ‘장사시설사업비’의 일환으로 양지공원에서 지원받는 수익금 중 1700만원을 들여 인다성 일대를 정비했다. 이제 성 뒤쪽엔 잔디가 깔리고 나무와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작은 공원으로 변했다.

그가 이토록 인다성을 지켜낸 이유는 무엇일까. 4·3사건의 직접 피해자인 조부모와 잊혀져 가는 4·3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김씨는 “할아버지·할머니 모두 4·3사건 때 행방불명되셨다”며 “그래서 그런지 인다성 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원형과 다르게 어설프게 쌓여 있는 돌을 정리하고, 갯돌을 이용해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며 “택지개발 담당 부서에 인다성 보전을 공식 요청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행정의 무관심과 개발 논리 등으로 잊혀지는 4·3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는 가 운데 4·3유적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다성은 단순히 길이 20m의 돌담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4·3의 아픔을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선 화해와 상생이라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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