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고 사라지는 ‘4·3 역사현장’
잊혀지고 사라지는 ‘4·3 역사현장’
  • 제주매일
  • 승인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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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치욕의, 혹은 비극의 역사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글귀다. 정확한 ‘원전(原典)’은 알지 못하지만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도, 중국의 난징 대학살 박물관에도, 우리나라 제암리 3·1운동 학살사건 현장에도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아로새겨져 있다.

‘제주4·3’이 올해로 68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이틀 후면 영령(英靈)들을 위로하는 ‘꽃비’가 다시 내릴 것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제주의 사월’을 보노라면 매번 행사내용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추념식(追念式) 하나만 남고 나머지는 점차 잊혀지는 것 같다.

과연 우리는 ‘4·3’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혹여 이제는 ‘용서’를 빌미로 잊어버리려 애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예컨대 ‘표선해수욕장’의 경우를 보자. 이곳이 4·3사건 당시 총소리와 비명이 끊이지 않았던 ‘학살(虐殺) 터’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동네주민 말고 그리 많지 않다. 기록을 보면 표선과 남원 일대 주민들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대규모로 총살당했으며 그 숫자만 수백명에 이른다.

그러나 희생자를 기리는 조그만 위령탑(慰靈塔) 하나조차 없고, 모 호텔 가는 길 구석에 그날의 사건을 알리는 푯말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비단 표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제주4·3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표선해수욕장과 같은 학살 터는 제주도내에 154곳이나 있다. 이 가운데 고작 3곳만 정비 관리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4·3유적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에 제주도도 할 말은 있다. “유적지 대부분이 사유지여서 이를 사들이는 예산이 부족한데다, 푯말 하나 세우는 것도 땅값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도 유적지 원상복구 등의 조치라기보다는 ‘최소한 잊지는 말게끔’ 역사의 현장을 알려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가일층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주문이다. 이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도정의 의지(意志)’ 문제다.

4·3으로 ‘잃어버린 마을’인 서귀포시 영남동은 이제 펜션 등으로 뒤덮여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설파한 이는 윈스턴 처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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