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특히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진리는 교회가 지켜온, 최고의 진리이다. 나아가 진리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정치적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없다. 진리의 영역은 인간이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합의의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배아를 조작, 실험, 복제할 수 있음을 합의했다고 해서 인간배아가 생명이 아닌 것이 아니다.
인간 배아를 단순한 세포덩어리로 여긴다거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로 여긴다면, 죽음의 문화를 급속도로 확산시켜 나갈 뿐이다.
그런데 배아복제 문제에 대한 교회의 비판에 대해 과학사학자 마이클 셔며는 그의 저서 ‘과학의 변경지대’에서 “교회는 한때 피임을 반대했다. 1940년대 인공수정이 도입됐을 때 일부 비판자들은 이를 간음이라고 불렀다”고 지적한 사례를 들면서 생명 보다 치료가 우선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줄기세포 발견이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는 진보주의자들의 발언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환경윤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책임의 윤리학’에서 인간에게는 ‘모를 권리’도 있다고 갈파하였다.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인간이 존엄해질 수 있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이 어떻게 갈지 예상한 선각자는 현대의 고삐 풀린 기술의 향방을 예견하였다.
이처럼 천주교 정진석 주교와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만남이 화제가 되고 있다.
두 사람은‘인간과 생명 존중’이라는 대전제에 공감하면서, 앞으로 서로 협력과 조언을 아끼지 않기로 의견을 모으고 헤어졌다.
정 주교는“황 교수의 연구 전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배아 즉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이뤄진 수정란과 같은 생명을 복제해 치료에 활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으며, 황 교수는“우리가 추진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라는 수정의 과정을 일체 거치지 않고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배아를 사람의 자궁에 착상할 가능성 또한 전혀 없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황 교수와 정 주교의 이번 회동에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전히 가톨릭은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며, 황 교수도 연구를 중단할 수는 없다는 주장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황 교수는 “난치 환자로부터 직접 얻은 피부세포를 체세포 핵 이식이라는 기술로 유도한 서울대 연구팀의 줄기세포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라는 수정을 거치지 않았다”며 “또 착상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 생명으로 발전할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김경재 한신대 신학연구소장은 “종교계가 온힘을 다해 힘쓰고 싸워야 할 일은 난치병 환자 치료를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혀, 혹시 가톨릭과 개신교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은 것은 아닌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김 관 후<북제주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