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제주해군기지 준공식 축전을 통해 “지역과 상생하는 해군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군도 그동안 ‘강정마을과의 상생(相生)’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하지만 말 뿐이었다. 나타난 결과는 너무나 치졸했다.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대한민국 정부가 내놓은 것은 ‘구상권(求償權) 청구’란 압박이었다. 수백 년 전통의 마을을 지키려는 백성에게 ‘빚 폭탄’을 안김으로써 손과 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술책이다.
보도에 따르면 해군은 제주민군복합항 구상권 행사를 위한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14개월 공기 지연으로 발생한 추가비용 275억원(삼성물산) 중 불법 공사방해로 세금 손실을 준 원인 행위자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구상권 행사 대상자는 강정주민과 활동가 등 5개 단체 120여명이며, 액수는 34억5000만원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게 시작이라고 한다. 삼성물산에 이어 대림건설도 230여억원의 배상을 요구, 배상금이 확정되면 해군은 추가로 구상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해군은 “이번 구상권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국책사업을 불법적인 행위로 방해해 공사를 지연시킨 행위에 대한 정당한 조치”라고 강변(强辯)한다. 과연 그럴까. 10년을 끌어온 해군기지 문제는 어느 일방의 책임이 아니다. 처음부터 절차를 준수하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했더라면 지금처럼 사업기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부 측은 적법 절차 운운하지만 해군기지 유치 단계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해군 등은 설득이나 타협보다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특히 마을의 상징이었던 ‘구럼비 폭파’는 당국의 ‘폭압성(暴壓性)’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주민들의 반대 투쟁을 불사르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공기 지연만 하더라도 그렇다. 해군은 그 책임을 주민들에게 돌리지만 같은 기간 볼라벤 태풍과 제주도의 공사중지 조치도 있었다. 해군이 얼마나 불·탈법과 편법을 저질렀으면 9차례에 걸쳐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겠는가. 그러고 보면 ‘태풍’과 제주도정에도 구상권을 행사해 책임을 물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정마을회 및 주민들은 30일 기자회견을 갖고 “마을을 지키겠다고 한 것이 죄일 것 같으면 이제라도 해군은 강정 주민들을 죄다 죽이고 마을을 통째로 가져가라”고 울부짖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