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도 점수 구걸도” 우울증 등 심각

“이번에 세 번째로 고장 났잖아! 일을 이런 식으로 할 거야?”
21일 오전 11시15분께 제주시 모 전자서비스센터. 한 고객이 얼마 전에 고친 텔레비전이 또 고장이 났다며 센터 직원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직원은 고객의 역정에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제품 수리를 안내했다.
이곳에서 상담 업무를 맡은 A씨는 “수리비가 많이 나오거나 그냥 단순히 제품이 고장 났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며 “서비스 업체라서 고객 대응도 업무에 속해 고객이 함부로 대해도 꾹 참을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취재 결과 하루에도 수백여명이 찾는 이곳 서비스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에 고스란히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센터 관계자는 “고객들의 폭언 등의 행위가 하루 수십여건에 달한다”며 “정도가 심해 관리자가 직접 고객을 진정시키는 경우도 2~3차례 정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 2013년에 실시한 노동환경연구소의 ‘감정노동종사자 건강실태조사’(남녀 2268명 설문)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0.6%가 자살 충동을 느꼈고, 4%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와 서비스 노동자들이 우울증 등의 질병에 노출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체 관계자는 “직원들 중 상당수가 ‘갑질’ 고객을 응대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동료 직원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집에 들어가서도 피곤해서 가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한다고 얘기한다”며 “심지어 아침에 출근할 때 회사에 가기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업체에서는 직원들에게 ‘친절’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고객평가제도’를 운용하며 직원들의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다. 직원 B씨는 “무례하게 대해도 꾹 참는 것도 모자라 평가 때문에 만족도 점수를 고객에게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감정노동 문제는 기업들의 과다한 경쟁으로 만들어진 해피콜, 고객평가 등 인사평가제도 때문에 악화한 측면이 있다”며 “이를 규제하거나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서울시 다산콜센터의 경우 폭언에 대해 고소고발하면서 악성전화가 많이 줄었다”며 “직원에게 심한 정신적 피해를 주는 고객은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조처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