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공항 관련 원 지사 발언 유감
주민들 반대 전에 설득 과정 부족
민주주의(民主主義). 정치인을 비롯해 공적 영역과 관련된 업을 갖고 있는 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사전은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권력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즉 남을 복종·지배할 수 있는 힘은 국민 스스로 행사할 때만 허용된다.
어떠한 정책이 결정되고, 그 정책이 실현되는 데에는 그것을 따르는 국민의 복종이 전제된다. 그렇기에 국민 스스로 그것을 따르겠다는 의사가 확인된 상태에서 정책이 결정·집행돼야 한다. 정책결정자는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런 경우 우리는 “민주적이다”고 평가한다.
모든 국민과 정책결정자들이 학창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지역의 민주주의 수준을 점검해 볼 만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제2공항’이다. 제2공항과 관련된 원희룡 지사의 발언을 살펴보자. 원 지사는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와의 신년대담에서 제2공항과 관련하여 “사실 주민들은 동의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동의를 얻으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소리”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월7일 지역주민 설명회가 파행을 겪은 후 기자회견에서, 원 지사는 “타당성 용역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며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발언에서 엿볼 수 있는 지사의 생각은 크게 2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 해당 지역주민들은, 제2공항 건설을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둘째, 주민들과의 대화 과정을, 제2공항 건설을 진행시키는데 필요한 절차 중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첫 번째 생각이 틀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주에는 자기가 살던,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땅을 관광개발과 인재양성을 위해 기꺼이 내놨던 중문관광단지와 탐라대학교 건설 사례가 있다.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님비(NIMBY)시설인 쓰레기폐기물처리시설까지 수용한 구좌읍 동복리 사례가 있다.
제주도민은 공익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사익을 스스로 기꺼이 포기할 정도로 성숙한 민주시민이다. 제2공항이 제주의 미래 백년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과 그 과정에서 이해를 구하는 작업을 했어야 했다. 지금 그들이 “절대 반대”를 외치기 전에 말이다.
두 번째 원 지사의 생각이 틀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의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정책결정자는 국민을 대신해서 의사 결정을 내린다. ‘대신’ 결정해도 좋다는 허락에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리한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정책결정자가 전문가라는 사람들과 의논해 “이것이 좋다”라고 결정하고 그러니 “주민들아, 이것을 따르라”는 방식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즉 선량주의(elitism)적 사고방식이다. 취임 일성으로 협치를 외쳤던 원 지사가 도민들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제2공항 건설 대상지의 주민들과의 대화는 단순히 이행해야 하는 절차 중의 하나가 아니다. 도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판단하고, 성의 있는 노력으로 설득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이어야 했다.
‘민주적이다’라는 판단의 핵심은 ‘합의정신’이 정책결정 과정 속에 내포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할 도민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과정론적으로 ‘제2공항’이라는 정책결정과정에 ‘합의정신’이 실현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과정과 결과, 모두 민주주의 관점에서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민선6기가 여전히 ‘협치’를 지향한다면 정책결정의 모든 길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통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