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에 스러진 마을 정체성과 추억"
"난개발에 스러진 마을 정체성과 추억"
  • 고상현 기자
  • 승인 2016.0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흥리 출신 손성국씨 출향 40년 깊어진 고향 사랑
자비로 '마을만들기 토론회' 등...최대 현안 '파래'
▲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 출신 손성국 씨가 새벽개(원담어장)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마을회관을 찾았다.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손성국(59)씨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우리 마을이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흐름을 막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날 자리는 손씨가 자비를 들여 ‘살기 좋은 신흥리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마을 토론회다. 손씨의 부탁으로 제주도의회 손유원 부의장,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이승희 교수 등이 참여해 신흥리 마을 발전을 위해 머리를 모았다. 

손씨는 신흥리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까지 제주에서 살았다. 1976년도에 부산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제주를 떠났다. 부산에서 조선소 일, 선박용 도료 사업 등을 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그런데도 고향 땅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신흥리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친구들과 저녁노을을 배경 삼아 즐겁게 물놀이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수 놓인 신흥리는 최근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몇 년 새 마을에 양식장, 요트장 등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중요한 자연문화유산이 훼손되고 있다. “친구들과 소라를 잡으러 새벽개(원담어장)에 자주 갔었는데, 그곳으로 향하던 오래된 마을 길이 민간 사업자에 의해서 사라졌어요”

그가 어렸을 때 뛰놀던 신흥리의 해안도 여름이면 파래가 파랗게 잠식하고 있다. “예전에는 파래 문제로 마을에서 골머리를 썩인 적이 없었어요. 양식장이나 콘도 사업자가 마을 주민들과 상의 없이 하천의 유속을 마음대로 바꾸면서 파래가 잘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탓이 큽니다”

이처럼 개발 사업으로 마을이 변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던 손씨는 3년 전부터 마을을 자주 찾고 있다. 자비를 털어서 파래 문제 등 난개발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차례 토론회를 열었다. “마을 주민들 대개가 어르신들이라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부산에서 살고 있어도 제주를 오가며 개발로 생기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는 주민들과 환경보존회를 만들 생각이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개발의 물결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개발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자연과 같은 마을 공공의 재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개발이 이뤄질 때 사업자와 마을 사람들 모두 이 계획이 백 년 뒤에도 현명한 결정인지 협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손씨는 부산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어렸을 적 추억이 깃든 신흥리 바다를 보러 갔다. 신흥리 앞바다는 손씨를 격려하듯 주홍빛 노을로 따뜻하게 물들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