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변심
제주의 변심
  • 유영신
  • 승인 2016.0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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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30년전 제주에 반해 입도
그 여자 ‘그 남자’ 따라 제주행
오랜 애인 제주도 최근 이상 기류

반갑던 이주민 이젠 점령군 같아
곳곳 낯선 카페에 사라진 이웃
푸르고 청정했던 제주 지킬 수 없나

그 남자. 30여년 전 어느 초여름 신혼여행 차 제주도를 처음 방문한 그 남자는 신부를 놔두고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겨우 며칠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의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자리잡은 섬, 제주도를 사랑하게 된 거지요. 결국 3년 만에 그는 제주로의 이주를 결심했습니다. 가족 친지는 물론 어여쁜 신부의 만류도 그의 결심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제주는 그에게 파란 바다, 맑은 공기, 푸르른 산야뿐만 아니라 정신없이 몰아치는 비바람과 성난 파도, 때론 갇힌 듯한 답답함까지 안겨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제주가 생명의 근원을 일깨워주는 파라다이스요 이상향이라고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그 여자. 그 남자를 따라 하는 수없이 생면부지의 낯선 땅으로 이주한 그 여자는 오래도록 외로움과 낯설음에 힘겨워했습니다. 마침내 아무에게나 열린 대문처럼 처음 본 이도 선뜻 믿어주는 오일장 아주머니의 푸근함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적 드문 시골, 숲속의 고요함과 한적함에 반해 그녀만의 제주를 즐기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골목이나 시장에서, 또는 어느 집 혼사나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들 거기서 거기로, 본 듯하고 들은 듯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답답하기보다는 한 울타리 속 공동체의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다가오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땅, 제주도. 이렇듯 그 남자와 그 여자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시간표대로 청춘을 바쳐 사랑하고 아껴오던 제주가 요즘 이상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변심을 하듯 말입니다. 행정에선 투자 유치를 명분으로 작심한 듯 땅을 마구 팔아치우고, 제주에 대한 외지인들의 관심은 투기 수준으로 변질, 제주를 흔들고 있습니다. 몇십년을 제자리걸음하던 정주인구가 급격히 늘어났고 제주의 집과 땅이 변화라는 미명하에 마치 확 바뀌고 있습니다. 덩달아 제주만의 미풍양속마저 날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처음엔 반가움으로 다가오던 외지인들의 제주 이주가 어느새 정복하려는 듯한 형국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는 비단 그 여자만의 것일까요. 요즘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변심한 애인을 두고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연인처럼 근심에 휩싸여 있습니다.

어느 집을 가든 어김없이 타주던 ‘잔칫집 커피’는 점점 사라지고 이젠 커피공화국이라 불러도 될 만큼 시내는 물론 바닷가나 시골 곳곳에 어김없이 커피숍과 카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작 동네사람들은 발 들여놓기도 어려운 분위기에 이름도 생소한 메뉴들만 가득한 외국식 레스토랑들이 늘어나고 집에서 친척과 이웃이 더불어 챙기던 잔치도 경쟁하듯 점차 고급호텔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갈 곳이 없는 이들에겐 별채나 땅 한 필지쯤은 기꺼이 내어주던 인심과 이웃끼리 경계도 지금은 ‘네땅 내땅’ 금 긋기에 점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먹고 자고 쉼의 기능을 하던 집과 전답은 이젠 경제적 가치로 환산부터 합니다. 이웃 친지들 눈이 무섭기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을 조심해서 형편이 넉넉해도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을 혼자만 누리지 않던 제주사회는 이제 끝난 걸까요? 그저 정갈한 집에 내 손으로 키운 건강한 식재료로 최소한의 손질로 만든 거친 음식을 먹고, 조금 멀어도 기꺼이 걷기를 선택하고, 감물 적신 옷에 만족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도움의 손 내밀기를 당연시 했던 제주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야 겨우 과거 어린 시절 도회지에서 익힌 생각과 문화, 생활 풍습을 벗을 만한데 제주는 도리어 도시의 문명과 생각, 가치들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무엇이든 없으면 나누어 쓰던 소용의 가치에서 소유의 가치로, 이웃이 곧 나요, 내가 곧 이웃이던 정이 가득한 제주였습니다. 생명을 품은 땅은 우리의 세상살이를 돕고 함께 발을 딛고 살아가는 터전일 뿐이라 생각되던 시절의 푸르고 청정했던 섬, 제주가 회색빛 도시로 변할까봐 그 여자는 오늘도 전전긍긍 애가 탑니다. 정녕 변심한 애인을 붙잡을 수 없듯 이렇게 제주가 변심해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봐야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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