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코앞이지만 정책·이슈 없이
공천 ‘아귀다툼’ 막장 드라마만 연출
선거철 왔으나 선거 같지 않아
제주지역 본선 대결구도 확정돼
경선처럼 ‘그들만의 선거’ 되지 않게
민심 담은 새로운 정책 제시해야
정치의 수단은 언어다. 상황에 맞는 적확한 표현력은 정치인의 큰 자산이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한국 정치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수사(修辭)의 달인’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詩) 구절로 JP가 인용해 유명해진 말이다. 유신독재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 열기가 가득했던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이 한창일 때 신군부 등장 등 어수선한 정국(政局)을 빗대어 한 말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원조격인 JP 앞에서 그 말을 썼다. 지난 10일 열린 JP의 출판기념회 축사에서다. “요즘 제 마음이 춘래불사춘입니다.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방해와 저항으로 인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4·13총선을 앞두고 자신이 밀어붙인 국민공천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 등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하지만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김 대표가 진짜 걱정해야 것은 좀처럼 나아질 줄 모르는 정치 현실이다. 유권자들은 “선래불사선(選來不似選)-선거철이 왔으나 선거 같지 않다”를 되뇌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있으나 여·야 할 거 없이 눈에 띄는 정책이나 이슈를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후보 공천을 놓고 ‘아귀다툼’ 막장 드라마만 연출하고 있다. 이날 JP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국민이 정치를 더 걱정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당초 100% 상향식 공천제를 주장했다. 모든 선거구에서 일반 유권자들이 직접 후보를 뽑게 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치 개혁의 완결판이자 우리 정치사의 혁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 관철을 위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말의 성찬으로 끝났다. 국민공천제는 누더기가 됐다. 전면 실시되지도 않았고, 결과 또한 개혁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지금까지 여론조사 경선 지역으로 정한 곳은 127곳. 전체 지역구(253곳)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번 안심번호 경선에서는 현역 의원들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현재 경선을 치른 현역 의원 25명 중 19명이 승리, 현역 승률이 76%에 이른다. 탈락자 중 비례대표가 3명임을 감안하면 지역구 현역의 승률은 86%에 달한다. 지난 19대 총선 때 지역구의원 기준 새누리당의 현역 교체율은 41.7%였다. 국민공천제가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제도로 전락했다. 정치 신인들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제도를 두고 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 김 대표와 새누리당이 공언했던 개혁 공천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이해찬 전 총리의 공천배제 배경에 대해 “정무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 6선의 중진을 쳐내는 데 듣도 보도 못한 잣대를 들이댔다. 주관적 판단을 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쯤되면 ‘공천(公薦)이 아닌 사천(私薦)’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공당의 공천 후진성으로 국민의 정치 불신은 더욱 깊어져 선거에 대한 관심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제주지역 4·13총선 본선 대진표가 확정됐다. 주요 정당의 공천 마무리로 선거구별 대결구도가 잡히면서 본격적인 선거전의 막이 올랐다. 제주시 갑에서는 양치석-강창일-장성철, 제주시 을에서는 부상일-오영훈-오수용 후보가 경쟁을 벌인다. 서귀포시에서는 강지용-위성곤 후보가 맞대결을 펼친다. 지난 각 당의 경선에 도민들 관심은 저조했다. 일각에서는 “그들만의 선거”라고 비하했다. 유권자 가슴에 와 닿는 정책 제시는 없이 인지도 싸움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본선은 달라야 한다. ‘선래불사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도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선거여야 한다. 민심의 향방을 제대로 담아내는 능력과 정책 등이 승패를 가른다. 민심을 파고들 새로운 정책이나 카드가 있는지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