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 설치·관리 부실 상당수 “있으나 마나”

휠체어 바퀴를 열심히 굴려보지만 높은 경사로를 올라가기엔 무리다. 이렇게 되면 고꾸라지거나 거꾸러지거나 둘 중 하나다.
결국 주위 도움을 받아 호텔 로비에 들어섰지만 턱보다 높은 접수대가 시선을 가로막는다.
이번엔 화장실이 문제다. 변기 옆에 설치된 고정 손잡이 때문에 휠체어에서 변기 위로 옮겨 앉기가 힘들다. 겨우 해결했지만 벽면 수직 손잡이가 변기와 멀리 떨어져 부착돼 있어 짚고 일어나기 버겁다.
지체장애인편의시설제주지원센터는 장애인 편의시설 활성화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오는 31일까지 제주도내 관광숙박시설 270곳의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실시 중이다.
지난 11일 현장 확인 결과, 제주시에 위치한 모 관광숙박업소의 경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적정 여부에 대해 상당 부분이 부적정하거나 미설치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 업체가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해당 법률은 1999년, 2005년, 2007년 총 세차례의 개정을 통해 기준이 강화됐지만 해당 업체의 건축허가일이 2005년 이전이라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따라서 업체 입장에서는 건축허가 당시 기준만 충족하면 되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장애인 편의시설을 ‘기준’대로 설치한다 하더라도, 부적절하게 갖춰졌거나 나중에 이를 바꾼다는 등 해당 시설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장애인들의 불편함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이동 약자들에 대한 행정당국의 소극적인 태도가 더해지면서 ‘장애인 이동권’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체장애인편의시설제주센터 관계자는 “실제로 현장에 가 보면 ‘있으나 마나’한 장애인 편의시설이 많으며, 어떻게 건축허가가 났는지 의문인 경우도 봤다”며 “모든 건축허가 과정과 사후관리에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주시 관계자는 “제주시에 위치한 관광숙박시설의장애인 편의시설에 관한 경우, 민원이 들어올 때만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시에서 시정조치를 내려 본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