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을 나는 기분이에요. 배우지 못 하고 힘들게 살아온 한(恨) 이제 풉니다.”
신입생 박수자씨(62, 사진)는 입학식 내내 눈가가 붉어졌다가 환해지기를 반복했다.
인터뷰 동안에도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라고 기쁨을 전했다가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왜 나를 낳으셨을까 돌아가신 어머니를 많이 원망했다”며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다.
2남 1녀를 두고 선흘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수자씨는 자신을 “4·3 때문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어머니의 전 남편이 4·3으로 생을 달리하자 재혼하며 낳은 오남매 중 첫째가 박수자씨이기 때문이다. 4·3이 나지 않았으면 어머니가 재혼을 할 일이 없었을 것이고 박 씨와 박 씨 아래 남동생 넷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집은 가난했다. 밥을 먹지 못 하는 날이 많아지자 남동생 손을 잡고 보육원으로 갔다. 보육원에서 남들보다 1년 늦게 겨우 외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더 배울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를 나온 뒤에는 남의집살이를 하며 어렵게 성장했다. 못 배운 아쉬움은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어느 새 반백년. 그 사이 박 씨는 할머니가 됐고 제주지역에는 박 씨와 같은 이들을 위한 방송통신중학교가 설립됐다.
박 씨의 입학은 모집 광고를 본 딸과 며느리의 적극적인 권유로 이뤄졌다. 지금 살고 있는 선흘에서 제주제일중까지 오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오가고 싶었던 길이라고 설렘도 전했다. 입학식이 있던 지난 12일에도 박 씨는 신입생 중 가장 먼저 등교했다.
“너무나 기다렸거든요. 학교가는 길을. 지금 하늘을 나는 기분이고, 기대가 무척 큽니다.”
박 씨의 학창시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방송통신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까지 열심히 배워서 자신처럼 못 배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말도 전했다.
인터뷰는 교실에서 박 씨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함께 걸어가며 이뤄졌다. 20권이 넘는 두꺼운 책들을 박 씨는 굳이 자신의 두 손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책을 만지고 뒷좌석에 옮겨싣는 조심스러운 그의 손길은 마치 귀한 것을 다루는 장인과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오래된 어떤 삶의 진리를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