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가 만 3~5세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 ‘선(先) 집행 후(後) 정산’ 방침을 밝혔다. 현재 어린이집 보육예산은 3월까지만 책정되어 있을 뿐, 그 이후의 예산은 잡혀있지 않다. 따라서 이 같은 조치는 4월부터 예상되는 어린이집 보육대란 사태를 막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으로 보인다.
원 지사는 9일 기자회견을 갖고 “예산 문제는 행정기관끼리 해결하겠다”며 “학부모와 보육교직원들은 예산 걱정을 하지 말고 아이 돌보기에만 전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들어가는 예산은 도교육청과 알아서 하겠다는 뜻이다.
불이 난 집은 그 이유와 원인을 떠나 우선 불부터 꺼야 한다. 제주도가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제는 이 불이 일회성이 아니라 언제든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이번 조치 역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기 보다는 ‘땜질식 봉합’이란 지적이 많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지금과 같은 갈등은 지난해 10월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에서 비롯됐다. 그간 정부(교육부)와 일정 부분의 비율로 부담하던 예산을 모두 교육청에 전가(轉嫁)했기 때문이다.
제주지역만 하더라도 누리과정 연간 소요액은 유치원 166억원과 어린이집 458억원 등 무려 624억원에 달한다. 열악한 예산의 일선 교육청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전국 교육청들이 정부 조치에 강력 반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주의 경우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모양새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도내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체 예산 458억원 가운데 76억원은 이미 도교육청 예산으로 충당됐다. 관건(關鍵)은 나머지 382억원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다.
제주자치도는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 ‘선 집행 후 정산’ 방침을 밝히면서도 어떤 예산으로 집행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다. 일견 ‘선심’을 쓴 것으로 보이나 정작 알맹이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제주도와 도교육청 간 ‘폭탄(爆彈) 돌리기’가 본격 시작됐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표(票)퓰리즘’의 당사자는 아무런 반성의 말도 없이 나몰라라 하는데, 그 뒤처리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