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유권자 속내를 알아?”
“니들이 유권자 속내를 알아?”
  • 김철웅
  • 승인 2016.0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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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관리위원회 활동 본격화
여야 모두 ‘슈퍼갑’ 권력
현역 5선 국회의원도 ‘추풍낙엽’

문제는 지역민심과의 ‘괴리’
유권자의 선택권 제한
어설픈 칼질에 민주주의 후퇴

추풍낙엽이다. 아니 그만도 못하다. 가을의 낙엽은 색이 바랜 뒤에도 바람에 버틸 만큼 버텨보다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번 제20대 총선 컷오프 대상자들은 그게 아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공천관리위원회의 ‘리스트’ 한 장의 종이에 선수(選數)에 관계없이 한순간에 나가떨어지고 있다.

국회의원은 각각이 헌법기관이다. 연평균 세비만 1억4000만원에 육박한다. 그리고 보좌진 인건비 4억5000만원을 비롯, 사무실 운영비·정책개발과 출장 등 1인당 지원경비가 약 5억6000만원에 달한다. 의원 1인당 연간 7억원 가량의 세금을 쓰는 셈이다.

예산안 심의·법률 제정,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탄핵소추권과 불체포특권·면책특권도 가진다. 그야말로 엄청난 특전과 권력이다. “우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표현을 빌리면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권력의 또 다른 정점이라는 얘기다.

공천관리위원회가 대한민국의 ‘갑’인 국회의원들의 명운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딱 붙어있을 것만 같던 금배지가 공천관리위원회 발표 직후 ‘뚝’이다. 공천을 받아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데, 경선 대상에서도 배제해 버리니 당에선 일말의 가능성도 찾기 힘들다.

공관위의 칼날은 더민주당에서 날카롭게 춤추는 양상이다. 지난달 24일 발표된 더민주당의 1차 컷오프에선 노무현 대통령 당시 비서실장까지 지냈던 문희상(5선)·신계륜(4선)·노영민(3선)·유인태(3선) 의원과 초선의 송호창·전정희·김현·임수경·백군기·홍의락 의원 등 10명이 칼을 맞았다. 이어 10일 2차 컷오프에선 강동원·윤후덕·부좌현 등 초선과 재선의 정청래·3선의 최규성 의원 등 5명이 탈락했다.

새누리당에선 지난 4일 친박계의 3선 김태환 의원이 공천에서 전격 배제됐다. 10일 발표된 2차 컷오프에선 현역의 탈락은 없었으나 김무성 대표에 대한 경선발표가 보류됐다.

여·야를 떠나 컷오프 제도에 대한 물음표가 크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듯 하던 갑을 잡는 공천관리위원회의 ‘슈퍼갑질’에 대리 만족도 느끼지만 본질에선 ‘오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컷오프에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컷오프 대상자는 그 기준으로 본 결격 사유가 원인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십인십색이다. 저마다 잘나고, 저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다. ‘공천관리위원’들이 좋아하는 유형과 유권자들이 좋아하는 유형이 다를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특정인들을 탈락시키거나 단수공천을 하는 컷오프는 공천관리위원들이 자신들의 취향대로, 유권자에 대한 선택의 강요다. 자신들은 담백한 설렁탕이 좋고, 짠 게 싫어도 유권자들은 얼큰한 육개장을 좋아할 수도 있고 건강에 이롭진 않더라도 큰 탈이 없으면 삼삼하게 짠 음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설령 ‘결격사유’가 있더라도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청렴하지만 실력이 모자라는 의사와 다소 문제가 있더라고 유능한 의사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지의 문제일 수도 있다. 환자 당사자가 아니면 ‘명분’이 좋은 전자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치료가 절박한 환자라면 ‘실리’가 있는 후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

“니들이 뭔데 내 인생을 욕되게 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지역에서 다선 의원으로 선출되며 쌓아온 덕망과 경륜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판이다. “오죽 (무능 또는 불량) 했으면 현역 의원이 공천도 받지 못하느냐”는 지적은 그 사람 인생의 마침표나 다름없다.

컷오프 결과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정치개혁 명분에도 불구, 새누리당은 친박의 주도권 쟁탈전, 더민주당은 친노 패권주의의 확대 재생산이란 혹평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당사자들의 재심 청구와 탈당 등 ‘후폭풍’도 거세지고 있다. 탈당 후 무소속 출마 선언도 늘고 있다. 공천관리위원과 지역민들의 ‘취향’이 서로 다르다는 방증에 다름 아닐 듯하다.

칼을 쥐면 자르고 싶은 사람의 심리가 문제다. 어설픈 칼질에 국민들의 선택권이 제한받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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