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행위 처벌 적발 난항
‘클레어법’ 효과도 미지수
지난해 여름 제주에 사는 최모(26·여)씨는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A(28)씨는 늦게 왔다는 이유로 최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A씨는 곧바로 최씨에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고, 최씨는 A씨를 용서했다. 최씨는 “남자친구여서 경찰에 신고하기가 좀 그랬다”며 “이후로도 몇 차례 비슷한 폭력이 이어져 결국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연인 간 폭력이 전국에서 총 7692건이 접수되고, 살인까지 이르는 경우가 102건에 달하는 등 최근 연인 간 폭력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주경찰에서도 ‘데이트 폭력 특별팀’을 구성해 지난달 3일부터 이달 2일까지 특별 신고 기간을 운영했다. 이 기간 제주 지역 각 경찰서에 접수된 피해 신고는 모두 18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데이트 폭력을 규제하는 법이 따로 없어 18건 외에도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연인 사이의 폭력은 특성상 신고를 잘 하지 않고, ‘가정폭력’처럼 따로 규제하는 법이 없이 폭력, 협박 등 개별행위별로 처벌하고 있어 피해자가 증거 수집 등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않으면 적발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치안정책연구소에서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인 간 폭력범죄자의 평균 재범률은 76.5%로 최씨의 경우처럼 연인 관계라는 이유로 신고를 안 하면 피해자가 계속되는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경찰에서는 ‘클레어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데이트나 동거 상대방의 가정폭력 전과 정보를 잠재적 피해자 등의 요청에 따라 공개하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이 역시 가정폭력 우범자를 미리 알 순 있어도 당장 폭력 현장에선 도움이 안 돼 데이트 폭력 예방에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류병관 창원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아예 법으로 규제해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가해자와 격리하거나 기소 시 의무적으로 가해자를 체포하고 있다”며 “우리도 현행 가정폭력 특례법상에 데이트 폭력을 추가하는 등 법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